어떤 정치인이 이런 말을 했다. "일본의 새 총리도 일본 최초의 전후세대이다. 이제 전후세대가 국가지도자가 되는 것은 세계적인 흐름이다."이 말의 속내는 우리도 전후세대에서 국가지도자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사실관계 뿐만 아니라, 비유에서도 우리의 정서에 부합하지 않는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자신을 전후세대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그는 전후세대가 아니다.
그가 태어난 해는 42년으로, 일본이 미국을 건드려 일으킨 태평양전쟁(41~45년)의 와중이다.
그런데도 그가 전후세대라고 칭하는 이유는 사물을 인식할 정도로 철이 든 때가 전쟁 이후라는 점을 내세워 노인천국인 일본 정계에서 상대적으로 젊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일종의 포장술인 셈이다. 낯 간지러운 발상이다.
■이런 낯 간지러운 발상까지 우리가 모방할 필요는 없다. 우선 어원이 우리 생각과 다르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전후세대는 6ㆍ25 전쟁(50~53년) 이후 세대다. 따라서 고이즈미 총리가 말하는 「전후세대」와 시점이 부합하려면 해방이후 세대라고 해야 마땅하다.
전후세대론을 편 정치인은 아마도 자신의 출생시점 때문에 일본 총리의 말을 원용했을 가능성은 높다. 그 정치인의 출생연도는 6ㆍ25 전쟁전인 48년이다.
■그렇기는 해도, 그 정치인이 말하려 한 뜻은 십분 이해가 간다. 우리 정치세계도 일본처럼 늙었다. 정치를 쥐락펴락 하는 정치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70대 후반이다.
나이 보다 경력면에서는 더욱 고색창연하다. 어떤 이는 정당의 총재가 된 뒤, 또 어떤 이는 대통령 후보가 된 뒤 30년 가깝게 그 반열에 머물러 있다.
또 어떤 이는 40년 전과 똑같이 권력의 2인자 자리에 앉아 있다. 나이 든 것이 단점은 아니다. 경험과 경륜의 면에서는 오히려 장점이 된다. 문제는 사고(思考)에 있다.
늙은 사고를 하느냐 젊은 사고를 하느냐에 있는 것이다. 정치 지도자들이 젊은 사고를 하고 있지 않다는 정황들이 부쩍 많아지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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