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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세상] 골프는 빈틈과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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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세상] 골프는 빈틈과의 싸움

입력
2001.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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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는 그림에 비유하면 동양화다. 서양화는 여백이 없이 색으로 채워지는 반면 동양화는 여백이 많다. 특히 난초나 대나무 그림은 여백이 절반이 넘는다. 동양화의 묘미와 깊이는 바로 이 여백에 있다.골프에는 틈이 너무 많다. 한번 라운드 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대략 4시간으로 잡으면 실제로 샷을 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스윙의 빠르기나 성격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나겠지만 보통 샷을 한번 날리는데 3~4초 정도 걸린다.

80타를 치는 골퍼라면 240~320초, 즉 4시간 걸리는 라운드에서 스윙하는 시간은 기껏 4~5분 정도가 되는 셈이다. 나머지 3시간55분이 바로 틈이다. 샷을 한 뒤 담소하며 이동하고 다음 샷을 준비하는 데 걸리는 이 시간이 바로 골프의 틈이다.

빈틈이 너무 많다는 점이 골프가 다른 스포츠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중 하나다. 상대를 두고 벌이는 스포츠는 거의 틈이 없다. 구기나 격투기는 게임 중에 딴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농구나 배구 축구 등은 생각할 겨를 없이 본능적으로 방어와 공격을 되풀이해야 한다.

권투나 유도, 태권도 등도 쉴새 없이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며 상대의 허점을 찾아 공격하는 일이 이어진다. 딴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이 게임종료의 벨이 울릴 때까지 사력을 다해 싸우면 된다.

구기 중에 공수교대를 하며 벤치에서 기다리거나 피처가 공을 던지는 준비를 하는 사이 등 비교적 많은 틈이 있는 야구는 골프와 속성이 비슷한 면이 있다. 직접 상대와 대치하지 않으면서도 기록으로 경쟁을 벌이는 양궁이나 사격은 골프와 거의 같은 속성을 갖고 있다.

실제로 활시위를 당기고 방아쇠를 당기는데 걸리는 시간은 매우 짧다. 경기에 소요되는 시간의 80%이상을 호흡을 조절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사용한다.

골프는 바로 이 틈과의 싸움이다. 샷을 하고 난 뒤 다음 샷을 할 때까지의 빈틈에 온갖 생각이 끼어든다. 지난 홀의 아쉬움과 실망감, 멋진 샷을 날린 뒤 똑 같은 샷을 날리고 싶은 욕심, 라운드중인 동반자 개개인에 대한 감정, 경쟁자의 플레이에 따른 마음의 흔들림,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나쁜 징크스 등 여름 하늘에 뭉게구름 피어 오르듯 온갖 잡념이 피어난다.

아무리 골프기술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이 빈틈을 다스릴 줄 모르면 골프를 제대로 즐길 수 없다.

빈틈에 비바람 눈보라가 몰아치고 천둥번개가 치면 샷도 망가진다. 반대로 바람 한 점 없는 호수면처럼 평온하면 평소 익힌 기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 골프가 영원히 정복될 수 없는 스포츠로 인식되는 것은 바로 이 빈틈을 다스리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

방민준 편집국 부국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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