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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 21세기 '립 밴 윙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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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 21세기 '립 밴 윙클'

입력
2001.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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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작가 워싱턴 어빙이 1819년 발표한 단편소설의 주인공 립 밴 윙클은 마을 뒷산에서 술에 취해 잠들었다가 내려와 낯선 세상을 만난다.주민들은 모두 생소하고, 단골 술집에는 조지 영국 국왕 대신에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초상이 걸려있다.

그 사이 영국과 독립 전쟁을 치렀다는 말을 듣고서야, 잠깐 잠자는 동안 20년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알고 당혹해 한다.

뜬금 없이 소설 얘기를 한 것은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의 에피소드가 생각나서다. 칠순을 앞둔 럼스펠드는 올 2월 독일 뮌헨의 안보 포럼에서 연설하면서, 자신을 ‘립 밴 윙클’이라고 소개했다.

25년 전 포드 행정부의 국방장관을 지낸 낡은 인물이란 비판을 의식한 제스쳐였다.

그는 “언론이 구세대라고 떠들어 아내가 아침마다 ‘일어 날 수 있느냐’고 묻는다”고 농담하는 여유를 보였다.

이어 “립 밴 윙클이 발견한 새로운 세상도 결국 과거 세상과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소설 속 시골뜨기 공처가 처럼 세월의 변화에 당황하지 않는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이날 럼스펠드 연설의 주제는 국가미사일방어(NMD)구상이었다. 그는 냉전이 끝나는 등 세상의 겉 모습은 달라졌지만, 평화와 안보에 대한 잠재적 위협은 확산됐다고 규정했다.

대량 핵전쟁 위험은 감소했으나, 미사일과 대량 살상무기를 지닌 ‘불량국가’들의 무분별한 도발 위협은 한층 커졌다는 것이다.

그는 이 위협에서 국민을 지키는 미사일방어체제 구축은 미국 대통령의 헌법적ㆍ도덕적 책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의 우방도 이런 위협과 책임을 함께 감당해야 하며, 방어체제의 혜택도 같이 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2일 부시 대통령이 내놓은 미사일방어체제 구축 선언은 21세기에 다시 등장한 ‘립 밴 윙클’의 세상 인식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럼스펠드는 냉전을 주도한 공화당 강경파를 대표할 뿐 아니라, 클린턴 행정부가 공화당의 압박으로 설치한 NMD추진위원장을 맡았었다.

따라서 부시의 외교 수사에 가려진 미사일방어 구상의 진정한 의도는 럼스펠드의 면모를 통해 엿볼 수 있다.

미사일방어 구상은 80년대 초 레이건 대통령이 추진한 우주방위계획(SDI)의 후손으로 불린다.

이 공상 영화 같은 ‘별들의 전쟁’ 계획을 처음 구상한 것이 바로 럼스펠드가 냉전의 브레인으로 활약한 시절이다.

이 황당한 계획은 당연히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나 군비경쟁을 촉진, 소련 붕괴와 미국의 ‘일국(一國) 패권’장악에 기여했다는 것이 냉전 세력의 자부심에 찬 평가다.

럼스펠드가 국방정책 책임자로 복귀한 지금, 미국이 축소판 ‘별들의 전쟁’구상을 강행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기술 발전에 따라 구상 실현이 가능한 상황을 거론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보다는 출발부터 우세한 군비 경쟁을 통해 잠재적 적의 힘을 소진 시키고, 자신의 몸집과 힘을 한층 키우려는 원대한 포석이란 지적이 많다.

막대한 비용도 결국 미국 방위산업에 돌아갈 것이고, 그 것도 보호혜택을 베풀 우방에게 나눠 부담하게 할 게 뻔하다.

미국이 명분으로 삼는 북한과 이라크 등의 미사일 공격 가능성을 실제로 믿는 것은 순진한 여론뿐이다.

돌아온 냉전의 투사들은 미사일방어 계획 등 공세적 안보정책의 주목표가 중국임을 애써 숨기지 않는다. 럼스펠드는 ‘동북아 핵전’에 대비한 신형 핵폭격기 개발까지 거론했다.

미국의 최대 우방 서유럽은 미사일방어 계획에 반발하면서, 짐짓 유럽연합(EU)을 통한 독자적 외교안보 이니셔티브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대서양 동맹’으로 얽힌 이들이 끝내 미국에 등 돌리는 법은 없다. 현실의 부담과 장래의 이익을 적절히 나누는 타협에 이를 것이다.

미국의 최대 우방 서유럽은 미사일방어 계획에 반발하면서, 짐짓 유럽연합(EU)을 통한 독자적 외교안보 이니셔티브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대서양 동맹’으로 얽힌 이들이 끝내 미국에 등 돌리는 법은 없다. 현실의 부담과 장래의 이익을 적절히 나누는 타협에 이를 것이다.

이렇게 보면 결국 미사일방어 계획은 미국과 유럽 방어와 무관하고, 중국과 동아시아를 겨냥한 포석이란 중국의 시각에 주목하게 된다,

21세기에 돌출한 '립 밴 윙클'은 결코 소설 속처럼 게으르거나 어리석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하느냐가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과제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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