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세탁방지법이 4월 국회를 넘겨버렸다. "국제 돈세탁방지기구인 FATF 총회(6월20일) 전까지 법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돈세탁방지 비협력국가로 지정되기 때문에 그 전까지는 통과되지 않겠느냐"는 것이 낙관 섞인 기대이지만 과연 그럴 지는 두고 볼 일이다.국회의원들의 반대로 사장될 뻔한 돈세탁방지법을 국회 법사위에 상정하는데 기여해서 한국일보 토요대담 '만남'에 초대됐던 민주당 조순형의원도 '이러다가 97년처럼 본회의 상정도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국회의원들이 체면도 있으니 그러진 않을 것이다.
국제적인 망신이 되는데"라고 대답했었다. 그러나 돌아가는 것을 보면 과연 국회의원들에게 체면이 있고 염치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가령 이 법안을 반대하는 의원들은 돈세탁방지법 내용 중 금융정보분석원(FIU)에 계좌추적권을 주는 것이나 출처가 불명확한 거액 금융거래를 반드시 신고토록 하는 것이 정치탄압의 구실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금융거래를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 정치탄압이 된다는 주장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다.
의원들이 연루된 거액 거래는 당사자에게 미리 통보를 해주는 조항을 넣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니 국회의원들은 스스로를 초법적인 존재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국회의원과 더불어 요즘 국민들이 불신하는 또다른 계층이 바로 의사, 약사들이다. 국세청 조사 결과 연 소득을 1200만원 안팎으로 신고한 전문의들이 대거 드러나고 허위청구를 한 의사, 약사들의 사례가 공개되면서 이들을 질타하는 소리도 높다.
물론 잘못을 저지른 이들은 일부일 테고 반론도 있다. 지방 의원 원무과 직원이라는 독자는 "시골 노인들이 다른 사람 보험증을 들고 와 진료를 받는데 일일이 확인할 수도 없다"고 억울해 했다.
문제는 그러나 이런 개별적인 사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회의원이나 의사ㆍ약사 모두 투명한 조사 경로 자체를 반대한다는 데 있다.
건강보험공단은 4월에 전국 910만 의료보험 가입자에게 진료청구내역을 통보하고 사실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2월에 가입자 1%에게, 3월에 가입자 10%에게 확인한 후 확대한 것이다.
그 결과 통상 3월보다 3~5% 증가하던 4월 수가청구가 300억원 이상 줄었다고 한다. 보험공단측은 이것을 '경찰효과'라고 명명한다.
감시역할이 발동하자 '범죄'가 사그러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범죄자 취급에 반발, 대한의사회와 약사회는 자율규제로 허위ㆍ부당청구를 줄여나갈 수 있으며,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보험공단에 조사권을 주거나 치료내역을 담은 '스마트카드'의 보급으로 진료와 청구과정을 교차검색하는 것을 반대한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만큼 이것이 충돌할 때는 서로 견제케 함으로써 부당한 특권행사를 막는다. 예외란 있을 수 없다.
4월부터 안전벨트를 강제화하면서 교통사고 사상률이 전년 대비 33%나 줄었다.
돈세탁방지법을 만들고 보험수가 청구가 투명해지도록 실사기능을 강화하는 것은 국민 경제를 위해 안전벨트를 매는 것이다.
이처럼 자명한 사실을 두고 정부는 흔들려선 안 되고 야당 역시 진실을 흔들려고 해서는 안 된다.
서화숙 여론독자부 차장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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