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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영칼럼] 정작 안락사 시켜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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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영칼럼] 정작 안락사 시켜야 할 것

입력
2001.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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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수(喜壽ㆍ77세) 산수(傘壽ㆍ80세) 미수(米壽ㆍ88세) 졸수(卒壽ㆍ90세) 백수(白壽ㆍ99세)등 나이를 표현하는 별칭은 대개 글자 모양에서 유래한 파자(破字)들이다.바야흐로 장수시대이고 보니 이런 별칭들을 대하게 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축복받은 미수연(米壽宴)에서 청년처럼 정정한 주인공을 만나는 일도 있고, 망백(望百)의 원로에게서 아직도 얼마든지 카랑카랑한 뜻밖의 목소리를 듣을 수도 있다.

지난 달 8일 미국에서 별세한 장 발(張 勃) 선생은 향수(享壽)가 '100세를 넘긴' 경우였다. 지난 28일에는 남북이산가족 서신교환때 사연이 알려졌던 김민하 민주평통자문회의 부의장의 노모가 '100세 부음'을 전했다.

백수(百壽)도 그리 낯설지 않다고 여기는지, '이제는 다수(茶壽)' 시대를 말하는 사람도 있다. 20(卄)에 88(米)을 더한 108세가 '다수'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 스트롬 서몬드는 99세의 현역이다. 상원의원 45년을 포함 공직생활이 73년 째다.

53년 전인 1948년에 이미 대통령에 출마한 일이 있는 이 원로중의 원로는, '그가 만약 쓰러져 유고(有故)되면 민주당 소속 주지사가 그 의석을 승계하게 되고, 따라서 현재 50 대 50인 상원의 여야 의석이 야당 우세로 바뀌게 된다'는 점에서 호사가들의 야박한 관심사가 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명백한 것은, 그같은 그의 '열쇠 역할'조차도 그만이 감당할 수 있는 원로의 몫으로서 당당하게 보인다는 사실이다. 가령 우리 풍토라면, 정치인으로서 '백수'에 이르도록 곱게 나이먹는 일이 가능하기나 할 것인가.

지난 달 12일 명동성당에서는 색다른 성(聖) 목요일 행사가 열렸다. 올해로 사제서품 70주년, 60주년, 50주년을 각각 맞이한 5명의 '원로'들을 후배신부들과 신자들이 함께 축하하는 자리가 마련된 것인데,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올해 95세인 임충신 신부였다고 한다.

남의 일생에 해당하는 70년을 신부로서 살아온 그는 20분 넘게 일어선 채로, 목소리하나 흐트러짐 없이 '사제의 길'을 술회해서 놀라움을 주었다.

회경축 (서품 60주년)을 축하받은 두 분 중의 한 분은 80대 후반의 나이에도 직접 승용차를 몰고 나타났더라고 한다.

금경축(서품50주년)을 맞이한 김수환추기경은 동창 신부 한 분과 자리를 함께 했는데, 올해가 우리 나이로 "팔순"이어서 주변에서는 전18권의 '전집' 출간을 준비중이다. 그가 사제서품된 것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의 일이다.

"바야흐로" 우리도 '노령 사회'에 진입한 것이 분명하다. 평균수명은 어디서나 그 나라의 복지수준을 말하는 눈금의 하나가 된다. 적체되는 노년인구는 나라마다 사회정책의 제1순위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평균수명 대신에 '건강수명'을 말하기 시작했다.

'건강하게 살아가는 기간'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평균수명만이 아니라 건강수명에 있어서도 일본은 세계1위라고 한다. 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의 건강수명 순위는 51위다.

4ㆍ19세대도 이미 노년 고개에 들어섰다. 예부터 오복(五福)의 하나인 고종명(考終命)은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하는 실존적 명제다. 제 명대로 살다가 편안하게 죽는 것이 '복된 삶'의 모습이다.

요즘 갑자기 제기된 안락사 논의는 기본적으로 '존엄사'의 문제이긴 하지만, 의사에게 '사형집행인'의 역할을 부여하는 잘못된 결과가 된다. '고통도 삶의 일부'라는 받아들임의 태도가 더 인간적일 수 있다.

장수시대에 정작 '안락사'시켜야 할 일들이 있을 것 같다. 여전히, 그리고 언제까지라도 한 치의 나아짐 없이 되풀이되는 우리 정치의 구태에 관한 것이다. 정치적인 투표행위로써 적나라하게 드러난 '여론'과 '민심'에도 불구하고 엉뚱한 길로 가는 정권의 독선도 그 하나다.

칼럼니스트 assisi6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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