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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글과 책 / 부정한 추녀로서의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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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글과 책 / 부정한 추녀로서의 번역

입력
2001.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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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가 늘 놓이게 되는 곤혹스러운 처지를 이탈리아 사람들은 "번역자는 반역자(Traduttore, traditore)"라는 속담으로 표현했다. 번역자는, 그가 가장 뛰어난 번역자일지라도, 반역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예컨대 어떤 번역자가 16~17세기 영어와 현대 한국어 둘 다에 매우 능통한 사람이고, 셰익스피어에 대한 비평적 안목을 갖춘 사람이라고 하자. 그럴지라도, 한국어가 세계를 담는 방식과 영어가 세계를 담는 방식은 똑같지 않아서, 그의 손을 거친 한국어판 '햄릿'은 영어판 '햄릿'을 고스란히 옮길 수 없다.

17세기 이래 프랑스에 널리 퍼진 비유를 빌면, 한국어에 너무 다가간 한국어판 '햄릿'은 '부정한 미녀'가 되고, 영어 쪽에 바짝 붙은 한국어판 '햄릿'은 '정숙한 추녀'가 된다. 모든 번역자의 꿈은 자신의 번역이 '정숙한 미녀'가 되는 것이겠지만, 그 꿈이 온전히 이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번역자로서의 발터 벤야민이 관찰했듯, 원본에서 내용과 언어가 과일의 열매와 껍질처럼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면, 번역의 언어는 그 내용을 헐거운 곤룡포처럼 덮어 버린다.

번역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 같다. 지난 해 가을 영미문학 연구회가 '번역,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고, 지난해부터 올해 초 사이에 일본의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의 인터뷰 '번역과 일본의 근대'(임성모 옮김ㆍ이산 발행), 반년간 다언어 잡지 '흔적'(문화과학사 발행), 일본의 번역가 쓰지 유미의 '번역사 산책'(이희재 옮김ㆍ궁리 발행) 등 번역을 주제로 한 책들이 잇따라 나왔다.

또 지난 주에 나온 영미문학 전문 반년간지 '안과 밖'(영미문학연구회 펴냄)도 지난해 심포지엄의 연장선에서 번역 문제를 특집으로 꾸몄다.

문화 횡단 작업에 흥미를 지닌 듯한 반년간지 '흔적'의 몇몇 논문들이나 '안과 밖'의 특집에 포함된 평론가 윤지관씨의 '번역의 정치학: 외국 문학 번역과 근대성'같은 글은 정치 행위로서의 번역을 살핀다. 그것은 번역 문제에 대한 거시적 접근이다.

쓰지 유미의 '번역사 산책'이 소개하고 있는 프랑스의 '부정한 미녀'논쟁은 번역의 구체적 방법들을 살핀다. 이것은 번역 문제에 대한 미시적 접근이다.

그런데 한국 번역 문화의 실상은 이런 논쟁들 이전에 있다. 능력과 정성을 결여한 번역자들이 거리낌 없이 쏟아놓는 번역서들은 흔히 '부정한 추녀'를 닮는다. 그것은 번역이라는 노동의 가치가 턱없이 낮게 매겨지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싼 번역료는 부실한 번역을 낳고, 부실한 번역은 싼 번역료를 정당화한다. 물론 이것이 우리 사회만의 현상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고질적 악순환의 고리를 어디에선가는 끊어야 한다.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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