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강원도의 동학유적을 찾는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 동학의 경전인 '동경대전'을 처음 간행한 인제군 갑둔리 마을이 사라져버린 것이다.유서 깊었던 이 마을은 집이 모두 뜯겨나가 폐허가 돼 버렸다. 갑둔리 일대를 종합훈련장으로 쓰기 위해 군부대가 모두 철거한 때문이다.
오랜 세월 보존돼온 문화유산이 신도시 건설이나 공업단지 설치를 위한 이른바 개발로 인해서만 갑자기 사라지는 것은 아닌 듯 하다.
■군은 훈련장을 마련하기 위해 80년대부터 준비해 왔는데 주민들은 이미 토지를 팔고 외지로 이주한지 오래다.
그 일대는 갑둔리의 절터에 남아 있는 통일신라말기 3층석탑과 5층석탑이 도 문화재자료 117호로 지정돼 있을 뿐 국가 사적지는 없다.
그래서 마을을 철거하고 지형을 바꾸는 공사에 전혀 개의치 않은 것이다. 하지만 강원도의 향토사가와 역사전공 교수들은 갑둔리가 지표조사도 없이 사라진 것을 애석해 하고 있다.
학술조사를 거치면 그 일대의 역사유적은 물론, 매장 문화재의 존재 여부도 알 수 있다. 아직 마을 주변의 모습이 남아 있는 까닭에 더 아쉬워하는 것이다.
■1880년 6월 15일(음력) 동학도 김치운 (金致雲ㆍ일명 顯洙)의 ㄷ 자 형으로 붙은 사랑채에서 '동경대전' 판각이 완성됐다.
조선사회의 불평등한 신분제도를 부정하고, 여성과 어린아이를 하늘처럼 여기라는 가르침이 담긴 동학은 이 경전이 전파되면서 널리 퍼져갔다.
우리 사회가 갖는 근대성은 외래사상 뿐 아니라 내적 발전을 보여주는 동학의 새로운 사상에서도 힘입은 바 크다.
■갑둔리 동학유적을 지금 되살릴 수는 없다. 다만 강원도의 문화보존에 관심이 큰 향토 사가들은 정식으로 실시하는 지표조사를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갑둔리 개울가 김치운의 집자리 산자락에 작은 표지석을 세울 것을 바라고 있다. 이 표지석이 남아 있으면 언제든 그 자리가 갖는 의미를 잊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최성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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