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중인 작곡가 박춘석(본명 박의병ㆍ71)씨가 7년 만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완벽주의자인 박씨는 1994년 8월9일 새벽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병든 모습을 보이기 싫다"며 한번도 언론의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폐렴까지 겹쳐 오래 입원해 있었으나, 최근에는 병세가 호전돼 서울중앙병원에서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 말은 하지 못하고 가까운 친지만 간신히 알아보는 상태다.
'트로트의 황제'로 불리며 검은 테 안경을 쓰고 화려한 연주를 보여주었던 박씨는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20평 남짓한 주공아파트에서 외롭게 살고 있다. "음악과 결혼했다"며 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그는 음악적 동지이기도 한 동생 금석(69)씨와 30여년간 자신을 돌봐준 70세의 '아마'(박씨의 친척으로 '아줌마'를 줄인 애칭)의 병수발을 받고 있다.
새벽까지 곡을 쓰다 쓰러진 박씨는 정신적 충격을 받아 와병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극구 거부해왔다. 그러나 재활치료를 받으며 기분이 꽤 좋아진 그는 "한국일보에서 왔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박씨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2,700곡을 발표했고, 고 길옥윤씨와 더불어 가장 많은 히트곡을 남긴 가요계의 거목이다. 작곡가인 동생 금석씨는 "고무 공장을 하는 아버지 덕에 어릴 적 집에 피아노와 오르간이 있었다. 형은 한번 들은 노래에 화음을 붙여 다시 연주하는 천재였다"고 회상했다.
경기중학 5학년(고교 2년)인 1948년 당시 서울대 음대에 다니던 길옥윤씨와 만나 함께 음악활동을 하기도 했다. 박씨도 서울대 음대에 진학했지만 중퇴하고 신흥대(현 경희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그의 작곡 데뷔곡은 최양숙이 부른 '황혼의 엘레지' "목이 메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로 시작하는 '비내리는 호남선'은 손인호가 불러 공전의 히트를 했다.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 '기러기 아빠' 같은 애절한 노래, 나훈아의 '물레방아 도는데' 와 은방울 자매의 '마포종점' 처럼 토속적 색채가 짙은 가요, 패티김의 '초우'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처럼 고급스런 팝스타일 등이 모두 '박춘석 사단'의 산물이다.
음악으로 평생을 보내고 이제 병마와 싸우는 쓸쓸한 몸이 됐지만 그는 한국 가요의 지평을 넓힌 작곡자이자 탁월한 재즈 피아노 연주자였다.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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