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 확산된 실업인구 및 이로 인한 새로운 빈곤층의 증가는 시급히 풀어야 할 정책과제이다.그러나 오래 전부터 빈곤층이 모여 사는 달동네는 가난의 대물림으로 열악한 주거환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불행한 가족관계와 열악한 교육환경으로 빈곤이 깊어져만 간다. 한편 정부의 빈곤대책은 부족한 재정도 문제되지만 유연하지 못하고 임시방편적 프로그램으로 문제해결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인 난곡 등 재재발을 준비중인 지구가 적지 않다. 1980년대 초반부터 도입된 달동네 재개발은 합동재개발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어왔다.
이 방식은 달동네를 전면 철거하여 고층아파트를 건립하는 형태이다. 그러나 서울 지역 전면철거재개발이 완료된 이후 달동네 원주민의 재 정착율은 평균 20% 이하 수준이다.
재개발사업을 통해 건설된 아파트는 빈곤층 원주민들의 구입과 유지관리가 불가능한 중산층 아파트들이다.
즉 달동네 재개발 아파트는 절대다수의 가난한 원주민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외지 중산층이 차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달동네가 재개발됨으로써 원주민은 이 지역에서 쫓겨 나가고 있는 것이다.
합동재개발로 인해 서울의 달동네는 점차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 재개발로 인해 빈민들의 경제수준에 부응하는 주택재고가 줄어들고 있으며 최근 전세값 급등으로 빈민들은 더욱 큰 고통을 받고 있다.
이러한 결과의 누적으로 주거빈곤층은 전 도시에 분산되거나 시 외곽지역으로 밀려나가 살게 된다.
80년대 이후 우후죽순처럼 발생한 '비닐하우스'와 '쪽방'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빈민주거 형태는 외환위기 이후 점차 확대되고 있다.
신 빈곤층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달동네의 가난한 주민을 위한 재개발사업은 어떤 방식이어야 하고 무엇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가.
첫째, 달동네 원주민이 재 정착할 수 있는 재개발이 되어야 한다. 현재의 합동재개발은 재개발이후 신규아파트에 입주 가능한 소수의 가옥주(지주)를 제외하면 대부분 외지인의 몫이 돼버린다.
과연 달동네 재개발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원주민들이 재 정착할 수 있도록 재개발사업 내용이 전면적으로 보강되고 주민과 지역사회 중심적인 접근으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 주민의 사회경제적 수준과 실태를 감안한 재개발이 되어야 한다. 지난 20여 년 간 진행되어온 합동재개발방식은 달동네의 물리적 수준을 향상시키는 아파트 건립에 초점이 주어져 있다.
달동네 거주자들의 사회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프로그램은 재개발사업에 전혀 제시되지 않고 있다.
서구 선진국들의 도시슬럼재개발사업은 단순한 물리적 재개발이 아닌 빈민들의 직업훈련 및 자활사업, 자녀교육환경개선, 노인가구를 위한 프로그램 등이 동시에 실시된다. 종래의 물리적 재개발에서 사회적 재개발의 성격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자활공동체적 접근이 필요하다. 달동네 재개발사업은 해당 지역주민의 기본 욕구 충족 뿐 아니라 생활안정이 최우선되어야 한다.
현재의 시혜적 공공근로사업이나 주민 인기에 영합하는 사업이 아닌 진정한 주민자활이 가능한 프로그램이 재개발사업과 병행하여 실시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 국민기초생활보장제가 실시된 이후 상당수 노인과 지원이 필요한 빈민들이 보호 망에서 밀려나고 있다.
혼자 사는 노인, 이혼렉같?등으로 방황하는 빈민을 위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적 프로그램과의 연계 없이 아파트만 건설하는 달동네 재개발은 빈민들에게 더욱 큰 고통을 줄 뿐이다.
달동네 주거빈곤층을 위해 공공 임대주택이 많이 공급되어야 하고 이 지역의 빈곤문화와 주민의 사회경제적 실태를 바탕으로 새롭고 종합적인 재개발 정책방향이 제시되어야 한다. 그래야 달동네 주민도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다.
하성규·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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