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한번도 방문한 적이 없다. 한일 의원연맹 소속도 아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독특한 대한(對韓) 이력에 정부가 속앓이를 하고 있다.일본의 정치인이라면 의원 교류차원 또는 개인 자격으로 수 차례 방한 경험이 있는 게 상례다. 총리에 오를 정도의 중진이라면 좋든 싫든 한국과 각별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하지만 고이즈미 총리는 우리나라에 대해 백지상태다. 방문한 적도 없거니와, 그와 친한 우리 정치인을 찾기도 어렵다. 고이즈미 총리가 속했던 후쿠다ㆍ아베ㆍ미쓰즈카ㆍ모리파 중에 친한파 의원들이 많은데도 그는 유독 우리나라와 인연이 없다. 자민당 의원 반 이상이 가입해 있는 일한 의원연맹에서도 지난해 탈퇴했다.
직설적인 성격 탓으로 이해되지만 그가 주일 대사관 관계자를 첫 대면하면서 "나는 김치를 아주 싫어한다"고 말한 데에서도 한국에 대한 인식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고이즈미 총리가 우리나라를 찾지 않은 이유는 더 유별나다. 기회가 없어 방한하지 않은 게 아니다. 스스로 방문을 '거부'했다. 북한을 방문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남한에만 가게 되면 한반도에 대해 편견이 생긴다는 게 그가 우리나라 인사에게 털어놓은 얘기다.
이 같은 신조를 스스로 남북한에 대한 '균형감각'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일본 총리에 대한 우리 정부 관계자들의 평가는 우려가 앞선다. 한국에 대한 무지(無知)가 정부의 대일 정책에 대한 편협한 시각과 우리 국민정서에 대한 몰이해로 이어질 것이 걱정되는 것이다.
그는 이미 일본 역사교과서의 왜곡에 대해서는 "문제없다"는 반응을, 재일동포 지방참정권 문제에 대해서는 "귀화가 원칙"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한ㆍ미ㆍ일 3국간 대북정책 공조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에 그의 '남북 균형의식'이 어떤 변수로 작용할 지도 미지수이다.
하지만 그를 혐한파(嫌韓派)로 단정하는 것은 무리다. 정부 관계자는 "그의 행동은 독특한 성격의 표현일 뿐 부정적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총리로서 '책임정치'를 구현하려면 한국과의 우호관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란 분석이다. 선입관이 없는 만큼 향후 무색(無色)의 상태가 친한(親韓)으로 채색될 여지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 외교정책은 외무성 관료에게서 나온다"며 "고이즈미 총리도 시간이 흐르면 대한 관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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