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서울에서는 한국 사회의 진로와 정책대안을 모색하는 두개의 지식인 모임이 동시에 출범했다. '대안정책연대회의'와 '미래전략연구원'이 그것."우리 사회가 이대로는 안된다"고 입을 모으는 두 그룹의 리더 박진도 운영위원장과 윤영관 원장에게 모임의 색깔과 목표, 그리고 예상되는 현실적 장애와 운영 계획 등을 물어보았다.
■박진도(朴珍道)
1950년 강원 삼척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東京)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객원연구원을 거쳐 79년부터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현재 참여사회연구소 소장, 한국사회경제학회 부회장 등을 맡아 활발한 사회활동을 펴고 있다. '한국자본주의와 농업구조''경제 발전과 이농'등 저서가 있다.
■윤영관(尹永寬)
1951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땄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정치학과 조교수를 역임하고 90년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세종연구소 자문위원, 한국정치학회 상임이사, 국제정치학회 이사 등을 지냈으며 '전환기 국제정치경제와 한국''21세기 한국정치경제모델'등 저서를 냈다.
-두 분은 같은 날 모임이 발족한 사실을 아셨나요.
▦윤영관= 지금 박교수님을 뵙고 알게 됐습니다.
▦박진도= 윤교수님은 제가 97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1년간 교환교수로 있을 때 만난 적이 있습니다만, 이런 인연을 또 맺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웃음)
-모임 소개를 해주시지요.
▦박진도= 요즘 노동자나 농민 집회에 나가보면 빠지지 않는 것이 'DJ정부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분쇄하자'는 구호입니다.
경제난의 책임을 신자유주의에만 전가할 순 없지만, 학자들 사이에서도 이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많이 있었습니다.
연대회의를 만들자는 계획은 지난해 8월 제가 소장으로 있는 참여사회연구소 하계연수회 때 고려대 김균, 성공회대 김동춘, 국민대 조원희 교수 등이 신자유주의의 대안을 제시하는 씽크 탱크를 만들어 보자고 했어요.
현재 학자와 노조간부 등 현장 활동가 100명 정도가 참가하고 있는 데 예상보다 호응이 커 몸 집이 더 불어날 것 같습니다.
▦윤영관= IMF 외환 위기, 남북정상회담 등 한국 사회의 변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지만 우리의 의식과 관행은 과거에 머물고 있잖아요.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민간의 지식인 연구소가 한국 사회에 무엇을 기여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지식인들이 국민과 정책 결정자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다리 역할을 하겠다는 취지에서 출발했습니다.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모종린교수, 김정욱 변호사, 박후건 보스턴컨설팅 컨설턴트, 벤처기업가 등 18명이 연구위원으로 참가하고 있고 일반인들에게 회원가입 문호를 개방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의 과제를 진단해 주신다면요.
▦윤영관= 저희는 정보화, 세계화, 남북통합의 세 가지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고 보고 이 3개 분과로 나누어 연구를 진행중입니다.
인터넷 인구가 2,000만명에 이를 정도로 급속한 정보화가 이루어졌고 외환위기에서 보듯 세계화의 도전을 실감했는데요, 사회 통합을 해치지 않으면서 효율적 제도의 틀을 만들어 이에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북한 문제도 중요하지요. 탈냉전이 세계적 추세라지만 한반도는 예외잖아요. 어차피 탈냉전이 대세라면 비록 국내외적 저항이 있더라도 외교를 어떤 식으로 펼쳐 그것을 이겨낼 수 있을까를 고민해볼 생각입니다.
▦박진도= 세계화 대처 방안이라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윤영관= 대응책은 두 가지라 생각합니다. 외적으로는 떼거리식으로 이동하는 국제금융자본의 횡포를 막고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를 창출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내적으로는 경제의 체질을 강화시켜야 합니다. 국가도 70년대식으로 간섭을 해서는 안되지요. 게임의 룰을 공정하게 집행하는 심판자 역할에 그쳐야 합니다.
이를 위해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위상을 강화해야겠지요. 또 세계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의 국내적 불안감, 즉 실업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국가가 사회안전망을 확보하고 노동력을 끊임없이 높은 단계로 숙련시키도록 과학적이고 제도적인 장치를 만드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박진도 = 국가는 게임의 룰만 만들고 나머지 부분은 시장이 작동하는 데로 내버려두라는 윤교수님과는 시각이 좀 다릅니다.
현 정부는 재벌 개혁을 하면서 개발독재시대의 유산을 청산하고 시장 중심의 룰을 만들어간다는 점에서는 진보적이고 개혁적이지만 그 룰의 형태엔 문제가 있습니다.
시장과 자본의 독재체제로 흐르게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의 자본시장이나 금융을 해외시장에 마구 개방하도록 두어서는 안됩니다. 단기 자본의 이동 규제와 국가기간사업에 대한 외국인의 지분 제한이 필요합니다.
▦윤영관 = 저희는 정부의 개혁이 미진한 첫번째 이유를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는데 소홀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지금까지는 정치적으로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됐고 재벌은 총수가 지배했고, 언론이나 검찰은 이런 권력과 유착해 있었지요.
이 유착 관계를 없애지 않으면 도덕적 해이의 재발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정부는 경제만 보더라도 강력한 재벌과 노조 양쪽의 저항을 물리치고 개혁을 이끌 지지층을 만들지 못했어요.
그 지지층은 개혁적 중산층이 돼야 합니다. 합리적 제도와 정책대안 제시로 이들 중산층을 개혁에 동참하도록 끌어내는 것이 연구원의 목표라고 할 수 있지요.
▦박진도 = 어떤 정책이든 이익집단 간 대립이나 저항은 불가피합니다. 문제는 대립 그 자체가 아니라 한쪽 세력의 일방통행에 있습니다.
'새는 좌우 날개로 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엔 우측날개 밖에는 없다는 것이지요. 보수적 기득권층의 힘은 센데 노동자나 농민들을 대변하는 힘은 없잖아요.
부평 대우차 해고노동자 폭력진압 사태를 보면 신자유주의라는 것이 위험수위에 다다르고 있다고 봅니다. 자기 생존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요즘 반개혁적으로 몰리잖아요.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정권 초기에 노사정위원회도 만들었지만 결국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조항은 다 빠졌습니다. 이렇게 볼 때 신자유주의 비판과 함께 정치 개혁이 중요한 것 같아요.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정당이 빨리 생겨나야 합니다.
▦윤영관 = 오히려 날개는 있는데 몸통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요. 국가 자율성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지요.
국가가 힘센 노조와 재벌 등 거대 사회 세력의 포로가 돼버려 장기적 국가이익을 추구할 능력이 없는 것이 문
제입니다. 국가가 중립적 입장에서 심판해야 하는데 말이지요.
-정책대안을 공론화하고 관철할 수단은 있나요.
▦윤영관= 우선은 목소리의 질을 높이는 데 전력을 투구해야 겠지요. 구체적으로 저희는 앞서 언급한 세가지 주제별로 매년 책을 낼 계획입니다.
매월 공개 포럼을 열고 연구위원들이 쓰는 칼럼 등도 모두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할 예정입니다. 보다 많은 회원을 확보해 여론화를 위한 저변을 다지는 일도 중요하겠지요.
▦박진도= 대우 자동차 매각, 한전기술의 주식 매각 문제 등 구체적인 사안별로 대답을 하겠습니다.
개별 연구자의 발언이 아니라 최소한 3명 이상이 모여 토론한 뒤 운영위원회를 거쳐 우리의 입장을 정리해 목소리를 내려고 해요. 내년 봄에는 대규모 연차대회도 열려고 합니다.
-내년엔 대선도 있고 한데 혹시 정치적으로 오염되지는 않을까요.
▦윤영관= 저희 연구내용이 결과적으로는 어떤 정당 정파에 유리할 수는 있겠지만 기존 정치세력의 이익에 얽매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모임이 정치권의 유혹에 취약한 것 또한 사실입니다. 제발 그냥 놔뒀으면 좋겠어요.
▦박진도= 어차피 저희 역할은 당파적일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하나의 세력이니까요.
새로운 진보적인 정치 세력이 나타난다면 정치참여도 굳이 거부하지 않겠지만 현재 여야 보수정당이 우리 목소리를 반영해 줄 것 같지는 않아요.
-두 모임의 성격이 약간 다른 것 같은데, 토론회 등 교류가 가능할까요.
▦윤영관= 그래야지요. 지금까지 우리나라엔 동일한 경향을 띄는 집단 내부 또는 집단간 논의는 많았지만, 색깔이 다른 그룹간 토론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 시도를 통해 논의의 수준과 폭을 넓히고 부족한 부분을 상호 보완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박진도= 동의합니다. 상대방의 색깔을 먼저 인정한다면 얼마든지 미래지향적 토론과 결론 도출이 가능할 것입니다.
유성식 기자
ssyoo@hk.co.kr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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