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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눈'의 수도자들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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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눈'의 수도자들이 밀려온다

입력
2001.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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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경북 영주시 어래산 기슭의 현정사(現靜寺). 시속 10㎞ 내외로 1시간을 달려야 나오는 두메 산골에 1,000여명의 승려와 신도가 북적거렸다.무형문화재 대목장 신응수씨가 책임을 맡고 불상, 단청 등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이 지은 사찰이 첫 선을 보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새 절의 주지를 보기 위함이기도 했다. 국내 일반사찰에서는 처음 주지가 된 푸른 눈의 스님, 현각(玄覺ㆍ37).

■불교계 최고의 포교사?

"한자를 하나도 모르는" 승려가 주지가 되던 날, 여느 법회와는 다르게 젊은이들의 모습이 눈에 띄게 많았다.

삼삼오오 모여든 젊은이들은 새 주지와 사진을 찍고, 대화를 나누며 이방의 승려를 기쁘게 맞이했다. 한 여대생은 곧 있을 그의 대학 강의에서 다시 뵙겠다며 흥분했다.

5월 5일 오후 3시 이화여대에서 열리는 현각 스님의 강의를 준비중인 한재련 이화여대 불교학생회장은 "학생들의 관심이 폭발적이다.

타대생들의 문의 전화도 많이 밀려와 장소를 더 넓은 곳으로 옮겨야할지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현재 예정된 700여석 규모의 법정대강당으로 부족할 것 같아 2,000석 규모의 대강당으로 변경해야겠다고 한다.

1999년 가을에 나온 현각 스님의 '만행_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는 40만부가 넘게 팔렸다.

책 출간 이후 각 사찰과 대학에서 강의 요청이 쏟아졌고, 그의 강의에는 평균 1,000~2,000명의 인원이 몰려들었다.

최근 그가 스승인 숭산 스님의 법문을 풀이해 펴낸 '선의 나침반'도 베스트셀러로 주가를 올리고 있다.

이방의 스님이 불교계 최고의 포교사로 떠오른 것이다. 미국 예일대와 하버드대를 나온 수재가 한국 땅으로 출가했다는 예사롭지 않은 이력, 밝고 사교적인 성격, 대중을 사로잡는 유머와 위트, 준수한 외모. '스타' 기질을 한 몸에 갖추고 있는 셈이다.

■밀려오는 이방의 승려

한국 불교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 현정사 법회에는 국제선원인 계룡산 무상사(無上寺) 조실 대봉(大峯ㆍ51) 스님, 무상사 주지 오진(悟眞ㆍ42) 스님, 화계사(華溪寺) 국제선원 지도법사인 무심(無心ㆍ43) 스님 등 외국인 스님들이 대거 참석, 한국내 외국인 스님의 위상을 확인시켰다.

현각 스님의 주지 취임은 지난 20여년간 꾸준히 진행되어온 외국인 스님의 한국 출가라는 흐름 속에 피어난 커다란 연꽃이다.

현재 조계종의 승적을 가지고 한국에 머물고 있는 외국인 승려만 38명.

연등국제불교회관(주지 원명 스님)이 운영하는 강화선원, 송광사, 통도사 등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데, 그 중심은 화계사 조실 숭산(崇山ㆍ75) 스님의 제자들이다.

1966년 일본에 홍법원을 설립하면서 해외 포교를 시작한 숭산 스님은 지금까지 세계 32개국에 130여개의 사찰과 선원을 건립했다. 그를 따라 출가한 스님이 60여명, 신도가 5만명이다.

숭산 스님의 해외 포교 원력에 힘입어 이방의 승려들이 한국 땅을 밟기 시작, 1984년 이들을 위해 화계사 내에 국제선원이 생겼다.

지난해 3월에는 이들만을 위한 국제선원인 무상사가 충남 논산시 계룡산 자락에 자리를 잡았다. 현재 화계사 국제선원에 16명, 무상사에 12명의 외국인 스님이 수행중이다.

■이력도 가지가지

이들의 이력도 다양하다. 숭산 스님의 맏상좌는 무상(無上ㆍ59), 무량(無量ㆍ42), 무심 스님. 하버드대에서 고대문학을 전공한 무상 스님은 1969년 대학 졸업 후 흑인민권운동에도 참여했다.

이후 예일대 로스쿨에 진학했다가 1980년대 초반 숭산 스님을 만나 출가했다. 무량 스님도 예일대를 나왔고, 무심 스님은 보스턴대 출신이다.

마찬가지로 1980년대 초반 숭산 스님의 법문을 듣고 불문에 들어섰다.

헝가리에서 영어 교사를 하던 청안(淸眼ㆍ35) 스님은 8년전 부다페스트에서 숭산 스님을 만나 출가했다.

무상사 주지인 폴란드인 오진 스님은 건축설계사였고, 미국인 대성(大性ㆍ50) 스님은 할리우드에서 영화음악 작곡가로도 활동했다.

7년전 출가한 명행 스님(明行ㆍ32)은 미국 코넬대에서 그리스와 라틴 고전문학을 전공했다.

2년전 출가한 신참 비구니인 관도(觀道ㆍ33) 스님은 미국 뉴욕의 의상 디자이너 명문대를 졸업한 후 고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배우들의 옷을 만들어주던 무대의상 디자이너였다.

■한국 불교의 국제화 시대

이들은 한국불교 국제화의 선두에 서 있다. 무상 스님은 미국 LA 달마선원 주지로 포교에 힘쓰고 있고, 무량 스님은 지난해초 미국 캘리포니아주 테하차비시에 한국식 전통사찰 태고사를 창건했다.

태고사는 부지 5만평에 건평 132평 규모의 한국식 전통 산중 사찰로 한국 불교 세계화의 메카가 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더 큰 의미는 다른 곳에 있을 것 같다. "한국 젊은이들은 서양 문화에 젖어있지만 서양은 지금 동양문화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요.

한국의 젊은이들이 잃어버린 전통문화를 외국 스님들이 더 잘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현각 스님)

서양인에게 불교는 이미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 역시 외국인 스님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보는 시대도 끝났다. 그들이 우리의 잊혀져 가는 전통 문화를 가르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국불교 명쾌하게 다가와 구도에 국적이 따로 있나요"

■회계사 국제선원 無心스님

"한국 불교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는 거예요. 한국사회는 서양문화가 들어와 전통을 잃어버렸어요. 이제 외국인 스님들이 다시 살리고 있습니다."

화계사 국제선원의 리더격인 지도법사 무심(無心ㆍ43) 스님의 이 말은 과장된 면이 있다.

하지만 외국인 스님들이 이 땅에 완전히 정착한 것은 사실이다. 그가 한국으로 출가한지도 17년이 된다.

숭산 스님의 맏상좌로 불문에 들어선 외국인 승려를 지도하고 있는 그는 매주 일요일 오후 3시에는 화계사 국제선원에서 영어법회를 열고 있다.

보스턴대에서 유기화학을 전공하고 식품회사에 다니던 그가 숭산 스님을 만난 것은 1982년.

평소 불교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그는 숭산 스님을 만난 2년 뒤 한국으로 출가했다.

"일본불교는 매우 형식적이고, 분위기가 어두웠어요. 티베트 불교는 여러가지 종파가 난립해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하지만 숭산 스님의 가르침은 명쾌하게 다가왔습니다."

한국에 와서 실망한 점은 없었을까. "생각했던 것보다 한국의 사찰이 조용하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엄숙한 수행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관광지화한 전통사찰을 꼬집는다. 그가 한국을 찾았던 1980년대는 정치적으로도 매우 혼란했다. "연세대 어학원에 다닐 때는 연일 계속되는 시위로 최루탄을 독하게 맛보았습니다."

이제 그는 한국 스님이 다 됐다. 유창한 한국말 뿐만 아니다. "세끼 꼬박꼬박 절밥 먹는 게 처음에는 무척 힘들었다"는 그는 점심시간이 되자 "지금 못 먹으면 점심 굶게 된다"고 걱정한다.

밥 먹으러 가야 된다는 그를 붙잡고 들은 마지막 말.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데 국적이 따로 있겠습니까.

서양의 물질주의 문명에서 잃어버린 참 나를 깨닫는 길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가도록 힘쓰겠습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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