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입구를 지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남자친구와 조용히 대화를 나누며 마티니를 즐기는 여성들. 시끄러운 테크노 음악에 맞춰 화려한 불꽃이 난무하는 칵테일 쇼에 박수를 보낸다. 재즈의 부드러운 선율에 몸을 실어 본다. 진한 시가 연기를 내뿜으며 바 스툴(stool)에 앉아 바텐더와 대화를 나눈다. 고독을 삭인다.
모든 것이 지겨워질 때 큐를 쥐고 풀(pool) 앞에 선다. 폭탄주도 없고 술주정도 없다. 바가 밤거리의 술문화를 바꾸고 있다.
■바가 좋은 이유
바는 테이블마다 별다른 구획이 없는 '열린 공간'. 하지만 어둑어둑한 조명과 다소 큰 듯한 음악소리가 프라이버시를 보장해 준다. 요즘 신세대 직장인들은 술보다는 진지한 대화를 위해, 취기와 객기보다는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바를 찾는다.
'다양한 술을 선택할 수 있다'는 이유도 빠지지 않는다. "향이 진한 위스키를 원할 때는 버번을, 가벼운 향에는 아이리시 위스키를 권한다. 손님이 원하는 알코올 도수에 따라 칵테일을 제조하기 때문에 취향에 따라 골라 마실 수도 있다." 경력 8년의 JW메리어트호텔 바 '디 모다' 바텐더 로저(30ㆍ본명 서병모)의 설명이다.
바에서는 안주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되고 남은 술은 맡겨둘 수도 있어 조금은 비싼 술값 부담이 줄어든다. 바를 즐겨 찾는다는 정선경(28ㆍ여ㆍ메켄에릭슨 광고기획)씨는 "여자끼리만 가도 마음 놓고 술과 대화를 즐길 수 있어 좋다"며 "술주정이나 폭탄주를 돌리는 남성들을 찾아볼 수 없고 술의 종류나 도수도 다양하다"고 말했다.
■우아한 고독을 즐기고 싶을 때
조금은 고전적이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서는 특급 호텔의 바가 좋다.
빼어난 조망으로 인기를 끈 쉐라톤 워커힐의 '스타라이트', 그랜드 하얏트 서울의 '파레스 바', 서울프라자호텔의 '토파즈' 등이 대표적이다.
여러가지 바 형태를 한 데 모은 JW메리어트호텔의 '디 모다'도 인기다. 스포츠 바, R&B 바, 시가 바 등을 갖춰 젊고 세련된 분위기와 화려한 독특함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술 한 잔을 시켜놓고 시가 바에서 조용한 대화를 나누다 재즈 라이브를 듣기 위해 R&B 바로 옮겨갈 수도 있고, 스포츠 바에서 포켓볼을 즐기는 것도 무방하다. 바의 복합공간화다.
첨단 유행이 흘러가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도 이름난 바가 많다. 유명 연예인, 패션산업 종사자들이 자주 찾고, 이들과 비슷한 문화를 향유하기 위해 기웃거리는 젊은이들도 많다.
지난 해 8월 문을 연 'S'. 청담동 주류의 트렌드를 잘 반영하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갤러리아 명품관 맞은편 골목에서 아무런 외부 장식 없이 'S'라고 새겨진 글자 하나만으로도 눈에 띄는 이 바는 높은 천정과 넓은 실내가 특징. 가격은 주변업소에 비해 20% 정도 비싸지만 모던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즐기는 고객들에게 인기다. 외국풍 인테리어의 '바레(BAR Ree)', '바람(Bar Ram)'도 30대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바는 계속 뜰까
청담동 정통 바 '지직스(ZZYZX)'에는 조금은 젊은 고객들이 많다. 6,000원대의 맥주, 칵테일부터 시작해 양주까지 많은 종류를 갖췄고 3년 전부터 계속되는 화려한 칵테일 쇼가 자랑이다. 대학로의 '골드러쉬', 신촌의 '제3제국', 웨스턴 바 체인점 '더 플레어'도 칵테일 쇼가 화려하기로 유명하다.
저녁식사를 걸렀다면 청담동 '야끼 바(yaki bar)'를 찾아도 좋다. 로바다야끼와 서양식 바를 접목한 형태로 일본 청주와 소주부터 와인과 브랜디, 칵테일에 데킬라까지 주류가 다양하다. 숯불에 구운 닭날개 요리와 닭산적, 조개 관자살 꼬치 따위의 꼬치구이류 안주가 많아 저녁식사 겸 술 한 잔을 동시에 즐기기 위해 찾는 이가 많다.
최근 가장 뜨고 있는 바 형태다. 신세대 마니아 잡지 붐(www.boomzine.co.kr)의 이해영(33ㆍ여) 편집장은 바의 번성 이유를 '커뮤니티 문화의 향유'에서 찾는다.
"청담동과 압구정동의 바는 감각과 스타일이 통하는 마니아들끼리 일종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무언의 느낌과 감각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바의 매력이다. 바와 식당의 결합은 밤 문화의 또 다른 혁신 요인이다."
고급 호텔과 강남 일대에서 시작된 '바'의 인기가 신촌, 대학로, 종로 일대까지 확산되고 있다. 어두운 바의 문을 열고 또 다른 세상으로 나가는 순간, '바 문화'가 밤의 문화를 변화시킨 것을 깨닫는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바 100% 즐기기
▲바텐더와 지배인의 이름 정도는 기억해 두자. 바 직원들은 대부분 '로저', '케빈', '포비' 등의 영어 이름 약칭을 갖고 있다. 이들은 애칭을 부르는 것으로 단골과 뜨내기 손님을 구별한다. 물론 단골에게 조금 더 많은 서비스가 돌아간다.
▲바에도 공짜술이 있다. 트렌드를 이끄는 청담동과 특급호텔 바들은 주류회사의 판촉 전쟁터나 다름없다. 신제품이나 기획상품은 바에 우선 제공된다.
▲특별한 날을 챙기자. 손님들이 많이 찾지 않는 일요일이나 주중 하루 정도는 할인과 특별서비스가 있다. 레이디스 나이트, 선데이 페스티벌 등 갖가지 이름이 붙은 날들은 기억해 두면 도움이 된다.
▲바에서는 주량 조절이 쉽다. 양주를 병으로 시키면 남은 술은 보관(keeping)이 가능하고, 칵테일을 주문하면 취향에 따라 알코올 도수를 조절해 준다.
▲바가 자랑하는 특별 칵테일을 찾아라. 일반 칵테일 외에도 각 업소들이 개발한 칵테일도 다수다. 이런 칵테일을 주문할 경우 화려한 춤과 불꽃의 칵테일 쇼를 관람하는 행운도 누릴 수 있다.
▲혼자서 찾기에 좋은 공간이 바. 바 스툴에 앉아 바텐더와 대화를 나누며 술을 즐길 수도 있고, 간혹 바텐더가 혼자 온 손님들을 서로 소개시켜 주며 술동무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고독이냐 대화냐, 선택은 손님의 몫이다.
도움말/ 서울 JW메리어트호텔 바 '디 모다' 지배인 빅토리아 권(35ㆍ애칭 '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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