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밀 줄 모른다. "일부러 수염을 기르느냐" 고 물어보자, "그냥 깎기 귀찮아서" 라고 했다. '파이란' 시사회가 끝난 뒤 만난 최민식은 눈시울이 젖어 있었다. 자기 영화에 운 그를 보고 "푼수 같다" 고 놀렸더니 쑥스러워 얼굴을 들지 못한다."철없던 시절의 나 같기도 하고, 동생이나 친구의 모습 같기도 하다. 정이 간다." 이 말을 하는데 한참이 걸렸다. 이따금 구체적 설명 없이 "그게 말이에요" "허, 참" "그렇더라구요"라고 끝을 맺는다. 어눌한 그의 말이 더 솔직해 보인다.
현실의 최민식과 '파이란' 속의 최민식이 별로 다르지 않다. "편해졌다" 고 했다. 그 전까지는 뭔가 만들려고 했고. 나름대로 인물에 대한 두 세가지 컨셉은 있어야 하고, 살을 붙여야 한다고 믿었다.
'쉬리'가 그랬고, '해피 엔드'도 그랬다. 그런 생각을 뒤집어준 것은 세월이었다. 어느날 불쑥 찾아온 불혹(不惑)의 나이. 불혹은 그에게 "내가 나를 비우는것. 비워야 채울 수 있다" 고 말해주었다.
그 여백의 자리에 강재가 들어왔고, 강재의 여백에 파이란(장바이츠)이 들어왔다.
파이란의 아름다운 마음, 가엾은 삶, 절실한 그리움이 강재를 울렸고, 강재가 최민식을 울렸다. "사랑이나 미움의 감정이 아니다.
인생 회환의 눈물이다. 내 인생은 뭔가. 내가 이렇게 한심한 인간이었나 하며 외로운 인간이 흘리는 서러운 세월에 대한 눈물이다.
파이란은 곧 강재의 거울이다. 강재가 한심한 양아치지만 나에게도 해당된다."
최민식은 강재에게서 인간의 냄새를 맡았다. 완벽한 인간보다는 솔직하고, 친근한 느낌.
최민식은 "내 자신이 결함이 많은 인간이어서 그럴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강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정말 영화처럼 쵤영장에서도 장바이츠를 만나지 않았다.
실물이 왔다갔다하면 상상이 깨지기 대문이었다. 처음 "오빠, 섭섭하다"던 장바이츠도 나중에 그의 의도를 알고는 오히려 좋아했다.
"만나지 못하니까 더 안타까운 마음으로 연기할 수 있었고, 관객들도 더 슬퍼한다."
속으로 스며드는 감정변화가 아니면 '파이란'은 실패라는 생각에 그는 집에서 '그래프'까지 그려보았다.
계산은 하되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 기술. 이제야 연극 스승인 안민수 서울예대 총장의 가르침이 생각났다.
작업환경에 염증을 느낀 TV드라마도 좋은 스승이었다. 시청률이 주는 아픔으로 단련이 돼 '쉬리' 가 그렇게 난리를 쳐도 '항상 반복되는 사이클' 이라 여기며 차분할 수 있었다.
한석규에게 "형인 나도 좀 먹고 살자"며 '넘버3' 로 시작한 영화는 무엇보다 여유있게, 무당이 굿을 할 때처럼 정성들여 준비하는 과정이 좋았다. 처음에는 느린 템포가 적응이 안됐다. 연극에서 수없이 반복했던 일인데도 답답해 미칠 것 같았다.
그것을 참아내면서 "나도 새롭게 살겠구나" 생각했다. 새로움이란 바로 '여유'와 '자유' 였다. 그래서 그는 마치 화가가 그림을 파는데 온통 신경을 곤두세우듯 배우도 관객 머리 수를 세고 있는 현실이 싫다.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곱씹어보는 자리가 늘 그립다.
임권택 감독의 '장승업'이 돼보겠다고 결심한 것도 그런데서 자유롭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강재처럼 자신을 돌아보고 싶었다.
최민식은 "종합병원에 검진 받으러 가는 기분"이라고 했다. 그럴 시기가 됐다고 생각했다. '어르신'(임권택 감독)에게서 "겉멋으로 산 너는 이게 문제야" 란 말을 듣고 싶다고 했다.
이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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