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계의 대표적 강경파 3명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정권의 탄생을 앞두고 밀실 회담을 가진 뒤 손을 잡았던 것으로 밝혀졌다.26일 도쿄(東京)신문 보도에 따르면 '전후 정치 총결산'을 외쳤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 '신의 나라'발언의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 '제3국인'발언의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지사 등 3명은 자민당 총재선거 8일전인 16일밤 도쿄 긴자(銀座)의 한 요리집에서 만났다.
'거물들의 만남'은 나카소네 전 총리가 주도했다. 에토ㆍ가메이(江藤ㆍ龜井)파의 최고고문이기도 한 그는 고이즈미의 승리를 예상하며 모리 전 총리에게 "우리 두사람이 고이즈미를 떠받쳐 나가자"고 제의했다. 또 이시하라 지사에게도 "당신도 참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또 국가 기본전략을 검토할 '국가전략회의'를 발족시켜야 한다고 강조해 두 사람의 즉각적인 공감을 얻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당선후인 25일 이 회의체의 설치를 대외적으로 발표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는 또 중일간의 갈등을 부른 리덩후이(李登輝) 대만 전 총통의 입국 비자 발급 문제에 대한 결정도 내려졌다. 이시하라 지사가 먼저 '독립국의 의지'를 강조하며 모리 전 총리에게 "(총리 재임) 막판이니 딱 잘라 결정하라"고 촉구했다.
모리전 총리는 "여러가지 문제가 생기고 질질 꼬리를 끌지도 모르니 잘 부탁한다"고 확답을 피했지만 참석자들은 이를 '수용'으로 받아들였다. 이 전 총통의 비자는 이틀 뒤인 20일 발급됐다.
회담이 끝날 무렵 모리 전 총리는 나카소네 전 총리에게 "곧 고이즈미가 찾아 뵐 것"이라고 약속했고 22일 나카소네와 고이즈미는 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은 23일 모리파와 에토ㆍ가메이파의 정책협의로 이어졌고 이어 24일 총재선거 투표에 앞서 가메이 시즈카(龜井靜香) 전 정조회장이 사퇴, 고이즈미 후보에 파벌표를 몰아 주었다.
다만 이시하라 지사는 "지금 누가 이끌어도 자민당을 구할 수는 없다"고 밝혀 별도의 정치 구상을 시사했다. 그런 그도 25일에는 "게이세이카이(經世會ㆍ다나카-다케시타-오부치- 하시모토파)의 자민당 지배를 끊은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고이즈미 정권 출범의 각본이 이들 3명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은 일본 정부의 강경 보수화를 예고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또 파벌 타파를 외치는 고이즈미 총리도 결국은 파벌정치가 낳은 '옥동자'였다는 점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도쿄=황영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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