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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 정월 라혜석 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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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 정월 라혜석 전집

입력
2001.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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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신여성'으로 불리었다. 도쿄(東京) 유학중 지하실에서 비밀집회를 갖다가 경찰에 잡혀 옥살이를 했다.집요하게 구애하는 이혼남 변호사에게 "시어머니와 전부인의 딸과는 별거하게 해달라"는 결혼 조건을 내세웠다.

첫 개인전의 그림이 매진됐고, 신문과 잡지에 여권(女權)에 관한 글을 연달아 발표했다. 유럽 여행중 만난 남편의 친구와 사랑에 빠졌다.

이혼을 당했고, 정부(情夫)에게 이혼보상 소송을 제기해 거금을 받았다. 그후 사회의 냉대와 궁핍으로 심신이 피폐해졌지만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1986년 경기 수원에서 태어나 1948년 세상을 떠난 정월(晶月) 나혜석(羅蕙錫)의 일대기다.

나혜석의 저작을 원본으로 수록한 '정월 라혜석 전집'이 발간됐다. 지금까지 나온 전집 중 가장 많은 자료를 모은 것이다.

나혜석의 재능과 기량을 표출하는 데 시 소설 희곡 수필 등 문학의 전 장르가 모자랄 정도였다. 이광수 김기진 같은 내로라 하는 문인과 한 자리에서 그는 제 목소리 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1918년 '여자계'에 발표한 '경희(瓊禧)'는 우리나라 최초의 페미니즘 소설로 꼽힌다.

일본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경희가 적극적인 자세로 구습에 맞선다는 줄거리다. 경희의 입을 빌어 "여자보다 먼저 사람이다"라고 부르짖는 나혜석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아버지의 딸인 인형으로/남편의 아내 인형으로/그들을 기쁘게 하는/위안물 되도다/노라를 놓아라' (현대 표기로 바꾸었음) 1921년 매일신보에 연재됐던 입센의 희곡 '인형의 가(家)'에 덧붙인 노래 가사는 유행가가 되었다.

결혼 1년 뒤에 발표한 글이 '남편의 인형이 되기를 거부한다'는 내용이다. 비평과 산문을 넘나들면서 그는 전통적인 여성의 '미덕'을 맹렬하게 공격했다.

"빙긋 웃고 살짝 돌아서며, 말 안하고 생각이 없는 것은 허구다.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거스르고 나아가는 게 자각한 여성의 임무"라고 외친다.

새로 추가된 자료 중 '만혼 타개 좌담회'(1933)를 눈여겨 볼 만하다. '삼천리'지가 주최한 좌담회에서 나혜석은 이광수 김기진 김억 등 당대의 문인과 만혼 풍조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이 자리에서 나혜석은 '스물 서너살이 넘도록' 결혼하지 않는 여성의 입장에 대해 "결혼한 선배들의 행복스럽지 못한 꼴을 구경하고 진저리를 치는 것"이라고 변호했다.

이날 제안된 만혼타개책은 '이혼한 남성에게 관대해야 미혼 여성문제가 해소된다' '신식 연애시장(戀愛市場)을 만들어 남녀가 자유롭게 교제해야 한다'는 등이었다.

몸과 마음이 지친 말년의 나혜석에게 일엽 스님은 불문에 귀의하기를 권했다. 그는 '자아를 버릴 수 없다'며 거절했다.

후대의 사람들은 나혜석을 '시대를 앞서간 여성'이라고 부르지만, 그는 21세기에 살아도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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