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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비리 몸통' 박노항 검거 / 노트 100장 '도피일기' 밤샘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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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비리 몸통' 박노항 검거 / 노트 100장 '도피일기' 밤샘 분석

입력
2001.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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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박노항 원사를 검거한 국방부 검찰단이 박 원사의 노트북 컴퓨터와 일기장, 전자수첩 등을 입수하고 내용분석에 박차를 가해 '병역 핵폭풍'이 예상보다 빠르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군검찰은 이날 박 원사가 은신중이던 아파트에서 압수한 물품들을 검찰단 사무실 한 곳에 모아놓고 밤새 병역비리 및 도피 비호세력에 대한 단서를 찾는데 힘을 쏟았다.

군검찰이 가정 먼저 해부에 나선 '박노항 파일'은 박원사가 날짜별로 빼곡이 도피생활을 기록해 놓은 A4용지 크기의 대학노트(100페이지 분량). 군 검찰은 '행간의 의미'까지 캐며 정밀분석을 계속했다.

또 군내 컴퓨터 전문가까지 동원돼 밤새 박 원사가 지워버린 파일 복구 작업을 벌였다.

전자수첩에 이름이 기록된 인사들의 리스트도 작성, 박 원사를 상대로 박 원사와의 관계 및 병역비리 연루 여부 등을 조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군검찰은 박 원사가 오랜 도피생활 탓에 '보안의식'이 느슨해져 병역비리의 흔적을 남겼을 가능성이 크고 검거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자료'를 갖고 있다는 첩보도 입수, 일말의 자신감까지 내비쳤다.

군검찰 관계자는 "여러 자료가 있기 때문에 조만간 병역비리의 맥락을 알 수 있는 단서들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전자수첩 등에 기록된 인사들은 예외없이 조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 원사는 일부 도피 생활 등은 털어놓으면서도 '주요 대목'에서는 묵비권을 행사해 군 검찰이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군검찰은 박원사가 입을 열지 않을 경우 전자수첩에 기록된 '리스트'가운데 군 관계자나 병역비리 연루가능성이 높은 인사들을 우선적으로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 대질신문 등을 벌여 '실체적 진실'을 캐내갈 방침이다.

황상진기자

april@hk.co.kr

황양준기자

naigero@hk.co.kr

■추적서 검거까지

“박노항!” “예!” 25일 오전9시55분,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현대아파트 33동 1113호.

이삿짐용 고가사다리차를 타고 베란다를 통해 들이닥친 수사관의 외침에 주방 바닥에 누워 여유롭게 얼굴 팩마사지를 하고 있던 ‘병역비리의 몸통’ 박노항(50) 원사는 눈도 뜨지 못한 채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군검 수사팀의 추적을 비웃으며 3년간 도피생활을 해 온 박 원사는 국방부 청사에서 승용차로 불과 10여분 떨어진 곳에 이렇게 자유인으로서의 최후를 맞았다.

▲ 가족-검거반 팽팽한 신경전

국방부 검찰단(단장 서영득)의 특별검거반이 박 원사의 국내 은신을 확신한 것은 지난해 12월. 수사팀이 감시해 온 내연의 여인이 박 원사와 통화한 사실이 포착됐다. 지난해 연말 2개월간의 추적 끝에 행주대교 인근 비닐하우스를 급습했지만 허탕을 쳤던 검거반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올해 2월13일, 군검찰ㆍ서울지검ㆍ경찰 수사관들로 구성된 검거반은 합동수사반 해체를 계기로 그간의 수사성과를 분석, 박 원사 가족을 더 조사키로 하고 2월22일부터 밀착 감시에 들어갔다. 주대상은 경기 의정부시에 살고 있는 박 원사의 누나 박모(57)씨.

그때부터 검거반과 박씨 사이에 쫓고, 감추려는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4월15일 영장을 발부받아 박씨의 전화통화 내용을 감청하던 검거반에게 이상 징후가 감지됐다.

▲ 가족들의 잇따른 연막전술

충남 서천에 살고 있는 박 원사의 형 박모(63)씨가 “내려오라”고 하자 누나 박씨가 “예”라고 답한 뒤 다른 곳과의 통화에서는 “부산으로 간다”고 말한 것.

‘부산행’ 얘기는 검거반을 따돌리기 위한 박씨의 연막전술이었다. 누나 박씨는 평소에도 어떤 통화든 짧게 끝내고 말도 많이 하지 않는 등 보안의식이 철저해 검거반은 애를 먹기도 했다.

심지어 한 화투놀이 모임에 가입, 매일 외출하는 등 검거반의 인내력을 시험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산으로 간다던 박씨는 논산에서 내려 큰오빠 박씨 집으로 갔고, 검거반은 이들이 박 원사를 다른 장소로 옮기려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 누나 박씨 추적끝 검거

4월20일, 상경 열차를 탄 박씨가 영등포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자 검거반도 급히 택시를 타고 추적했으나 놓치고 말았다.

검거반은 박씨를 태웠던 택시를 찾아내 박씨가 동부이촌동 현대아파트 앞에서 내린 사실을 확인, 다시 탐문에 나섰다. 우선 밤마다 불이 꺼진 집으로 대상을 압축, 범위를 좁혀 나갔다.

그 결과 항상 불이 꺼져 있는 33동 1113호의 가스 계량기가 돌아가고 배달 신문이 없어지는 사실을 확인했다. 박씨가 33동에 드나드는 것을 봤다는 목격자도 찾아냈다.

검거반과 박노항가족의 치열했던 검거전이 검거반의 승리로 끝나는 순간이다. 수사결과 박 원사는 지난해 2월부터 이 아파트에 은신, 누나 박씨가 가져다 주는 음식으로 연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또 여장 등으로 철저하게 위장하면서 도피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신장 169㎝, 몸무게 ㎏, 둥근얼굴의 미남형.” 사진자료를 통해 알려졌던 ‘중후한 풍모’는 간 데 없이 초췌한 모습으로 수사관에게 손을 내밀었다. 박은 “죄송하다. 죽을 죄를 졌다. 자수해야 할지 죽어야 할지 많이 고민했다”며 고개를 떨궜다.

황상진기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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