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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타살' 당하는 실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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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타살' 당하는 실업고

입력
2001.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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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학교가 폐교 위험에 있습니다. 상고라면 좋지 않게 보시는데, 전 이 학교에 온 것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대학진학만 생각하며 공부에 찌들려 살기 보다 동아리활동도 하고, 무엇에 소질이 있는지 깨닫기도 했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24일 서울시교육청 홈페이지에 서울 영락여상 학생이 '학교를 살려달라'고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

내년 개교 50주년을 맞는 명문 영락여상이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한 울타리 안에 15학급의 여상과 24학급의 남자 인문고를 운영하는 학교 이사회가 최근 앞으로 3년 동안 신입생을 뽑지 않는 방법으로 여상을 없애고 남자 인문고를 36학급으로 확대하기로 확정했기 때문이다.

요즘 교육현장은 실업고의 무덤이다. 올해만 목포상고, 마산상고, 광주상고, 동대문상고 등 40~80년 역사의 명문 실업고가 인문계로 전환했다.

1998년 이후 모두 15개의 실업고가 문을 닫았고, 폐교나 인문계 전환 신청을 준비하는 곳도 줄을 서 있다.

실업고 위기의 1차적 원인은 지원율 격감이다. 올해 충북, 전북, 경남이 정원 미달이었고, 다른 곳의 지원율도 정원을 간신히 넘긴 수준이었다.

서울은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정원미달이었다.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외면을 받다보니 정부가 잇따라 내놓은 특성화 학과 설치, 교육과정 자율화 및 진로시범학교 운영 등 실업고 활성화 대책도 대세를 돌이키기에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실업고 위기의 근본원인은 학벌 중심 사회가 '업(業)'자 학교에 씌운 멍에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여상에서 여고로 교명만 바꿨는데 지원자가 몰려온 학교가 있다. 국가 기간산업의 기술인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실업고를 활성화하는 것 외에 대안이 없는 데도 상황이 이렇다"고 토로한다.

자격증보다 학벌이 중시되고, 능력보다 학력에 의해 보수가 결정되는, 또 그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사회에서 실업고는 마지막 숨을 헐떡이고 있다. 실업고의 '자살'은 실은 사회가 강요한 '타살'이다.

안준현 사회부 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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