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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껍데기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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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껍데기만 남았다

입력
2001.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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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사회는 극도의 양분현상으로 치닫고 있다. 모세혈관처럼 퍼진 지역감정, 모든 변화를 거부하는 수구세력, 언론고시와 세무조사에 대해 언론탄압이라고 주장하는 언론권력의 문제, 한치의 양보도 없는 기득권층의 행태 등이 그 원인이다.일부 정치인은 이러한 양극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 모색보다는 ‘정권의 나팔수’ 등 극단적 표현으로 이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지난 23일 여ㆍ야가 합의한 돈세탁방지법안의 내용을 보면 이러한 수구적 현실을 실감하게 한다.

불법정치자금을 돈세탁 처벌대상에 포함시키라는 여론에 고민하던 정치권은 드디어 법기능공적 묘수를 찾아내어 이 법안의 내용에 합의는 하였다.

그러나 결국 예상했던 대로 알맹이는 가고 껍데기만 남았다는 느낌이다. 합의내용을 살펴보면 과도한 성형수술로 인해 사실상 이 법 제정의 의미를 상실하게 할 정도로 달라진 모습이다.

이번에 합의된 내용대로라면 차라리 제정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본다. 만들기보다 고치기가 더 힘들기 때문이다.

돈세탁방지법안에 대하여 보인 정치인들의 태도를 보면서 우리사회가 구태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느끼게 한다 . 그 동안 이 법에 대해서는 정치자금법이 있으므로 정치자금을 돈세탁 처벌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논리, 금융정보분석원의 금융계좌추적은 사생활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 정치탄압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항변으로 인하여 국회통과가 지연되어 왔다.

우리의 경우 돈세탁방지법의 입법필요성은 선진국처럼 조직범죄나 마약류범죄보다는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확보하여 정치부패를 막기 위한 방안으로 제기된 것이다.

그리고 돈세탁을 처벌하기 위해서는 금융거래의 방식이 특이하여 출처가 의심스러운 정치자금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한 계좌추적이 필수적이다.

또한 금융계좌 추적이 남용되어 국민들의 사생활 침해를 우려한다고 하지만 정작 국민들은 알맹이가 빠진 돈세탁방지법이 통과되는 상황을 우려한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계좌추적으로 인한 사생활 침해를 염려할 정도의 금융거래와는 무관한 일상을 살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걱정을 해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물론 국회의원 가운데에는 돈세탁방지법안과 관련하여 조순형 의원이나 천정배 의원처럼 소신을 굽히지 않는 정치인들도 상당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바른 소신의 정치인들이 대세를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소외되는 정치풍토가 문제이다

정치자금이 포함된 돈세탁방지법이 통과된다고 해서 우리 정치가 곧 투명하게 되고 정치풍토가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돈세탁방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이 걱정(?)할 정도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데에는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즉 정치권이 부패정치의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는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권은 국민여론을 조금이라도 의식한다면 이 법안이 입법취지에 맞게 통과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회창 총재는 물론이고 여당의 대권후보들 역시 이처럼 중요한 입법사안이라면 소신을 밝혀 자신의 정치철학을 국민들에게 알려야 하지 않을까.

박상기·연세대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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