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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권력기관 '무대밖' 집단행동맹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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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권력기관 '무대밖' 집단행동맹세

입력
2001.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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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흥부전에서 심술 사나운 놀부가 빠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마찬가지로 변사또가 없는 춘향전을 상상할 수 있을까. 이런 궂은 일을 맡은 악역이 있음으로써 작품은 더욱 빛을 발한다.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조직도 역할분담이라는 같은 원리로 움직인다. 그 역할도 극중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선역과 악역이 함께 존재한다.

흔히 가정에서 엄부자친(嚴父慈親)이라는 것도 가정내 역할분담을 일컫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조직을 보면 검찰과 경찰은 행정부, 법원은 사법부에 속해 있으면서 맡은 역할은 서로 다르지만 국가라는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하는 목적은 모두 동일하다.

그런데 이들이 요즘 들어 본연의 임무는 망각한 채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기주의에 빠져 티격태격함으로써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대우자동차 폭력진압사태에 대한 일부 경찰의 집단행동과 법원과 검찰 사이의 공개적인 갈등표출이 그런 경우에 속한다.

대우차의 폭력진압은 누가 보더라도 경찰이 잘못한 일이다. 입이 열이라도 경찰은 할 말이 없어야 한다.

아무리 말 못 할 사정이 있어서 그 목적이 정당하였더라도 경찰이 사용한 원색적 폭력이라는 수단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 폭력으로 강한 정부를 구현하려고 했다면 우리 경찰의 민주화는 아직도 멀었다. 그래 가지고는 수사권독립이 안 된다.

상처는 매를 맞은 사람들만 받는 게 아니다. 바로 우리의 아들인 진압전경이 때리면서 받은 마음의 상처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도 부족해서 경찰청장 구명하겠다고 일부 경찰이 집단으로 성명서를 발표한 것은 마치 극중배우가 자기가 맡은 역할이 마음에 안 든다고 무대를 박차고 나온 것과 마찬가지이다.

법원과 검찰도 각자 맡은 역할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법원이 수사에 관여해서는 안될 뿐만 아니라 검찰도 판결에 사족을 달아서는 안 된다.

그 결과가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판결문과 공소장을 통해서만 자신의 의사를 밝혀야 한다. 그것도 법률적으로 해야 한다는 한계를 지켜야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법정을 박차고 나와서 제2 라운드 장외시합을 벌이고 있으니, 이 광경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고울 수가 없다. 법리적으로 본다면 법원이나 검찰의 주장에 다 일리는 있다.

그러나 문제는 양측이 무대 밖으로 나와 있다는 것이다. 무대를 등진 배우, 그것도 권력에 대한 관계를 이야기하자면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오십보백보인 두 당사자가 국가경영은 뒤로 한 채 하찮은 자존심싸움에 목숨을 걸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검찰과 경찰은 처음부터 궂은 일을 맡기로 작정하고 나선 사람들이다. 그들의 일의 속성은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잘해야 본전이고 대부분 좋은 소리 못 듣게 되어 있다.

자신들의 노고를 몰라준다고 투정을 부릴 일도 아니고 더구나 칭찬은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국가를 위한 책임감을 일의 원동력으로 삼고 정치적으로 그리고 당사자 사이에서 얼마나 중립적 입장을 가지고 권력을 집행하고 있는가를 반성하면 된다.

사법권독립은 완성품이 아니라 아직 진행중인 사안이다. 법원 역시 쓸데없는 우월감에 사로잡혀 검찰과 도토리 키재기 할 것이 아니라 심판관답게 인격적으로 성숙된 의연한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

검찰이 수사한 내용에 대해 개인적으로 왈가왈부하는 것은 영역침범으로서 심판이 선수로 뛰겠다는 발상과 마찬가지이다.

법관이 내리는 판결은 '사람'이 아니라 국가기관으로서 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설사 오해를 받는 부분이 있더라도 개인적 견해표명은 안 된다. 더구나 검찰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언행은 법조삼륜(法曹三輪)의 동지에 대해 취할 태도도 아니다.

명심판은 선수를 존중할 줄 안다.

배종대·고려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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