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누굴 기다리는 게 제일 싫어. 밀수할 때도 매일 접선 접선 접선! 저쪽놈을 기다리노라면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올라.일이 잘못된 건 아닐까, 이 자식이 배신한 건 아닐까, 짜부가 낌새 챈 건 아닐까.." 세 퇴물 도굴꾼이 생의 마지막 베팅을 건다.
국립극단의 '피고지고 피고지고'는 쓸쓸함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결같이 아웃사이더였던 세 사내, 왕오 천축 그리고 국전이 그려보이는 조락의 풍경이다.
벼락횡재의 꿈을 버리지 못해 3년 동안 도굴에 매달려 온 중늙인이들이다. 무교동 낙지골목에서 만난 여자로부터 신라때 보물이 묻혀 있다는 절 이야기를 들은 이들이 그 절에 다다르기까지의 풍경이 중후한 연기로 펼쳐진다.
93년 국립극장에서 초연된 이래, 94년 97년 같은 곳에서 상연됐던 이 연극은 평균 객석 점유율 8할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당시는 완전한 버전이 아니었다.
사변적인 만연체 대사가 입에 붙지 않는다는 당시 출연 배우의 불만에 작가는 20분에 달하는 분량을 들어내야 했다.
이번 무대의 세 사내 역시 초연 당시 세 사내로 분했던 배우들이다. 왕오(69)역에 이문수(52), 천축(68)에 김재건(54), 국전(67)에 오영수(57) 등 국립극단의 간판 배우가 펼칠 연기도 큰 관심을 모은다.
연출자 강영걸(59)씨는 "배우 나이 50이 넘으면 30~40대가 1년 해야 얻어낼 감정 수위를 단 한 시간에 체화시켜 낸다"고 말했다.
프랑스 유학 경력의 30대 요정 마담 난타는 이혜경이 분, 농염한 모습으로 노인들의 부화한 꿈을 탕진시킨다.
"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놈들이라고 생각지 않네. 떵떵거리며 살았든 죽을 쑤며 살았든 모두 똑 같은 거야.
그저 피고지고 피고지고 하는거야." 천축의 말은 감각과 이미지에 의존하는 요즘 연극들에서는 느끼지 못할, 커다란 위로로 다가온다.
풀 버전인 이번 무대의 상연 시간은 2시간 35분이다. 이만희 작. 5월 1~27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월~금 오후 7시 30분, 토 오후 6시, 일 오후 4시.
장병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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