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변 작은 학교 뒷동산에서 열린 음악회를 보러 200여 명이 찾아왔다. 서울에서 버스 3대로 출발한 140여 명과 동네 주민, 이웃 도시 전주에서 찾아온 손님들이 솔밭에 앉아 음악을 들었다.첼리스트 양성원과 피아니스트 문익주가 쇼팽과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하고, 시 낭송과 어린이들의 노래도 곁들인 조촐한 음악회였다. 솔숲에 일렁이는 바람은 벚꽃이 눈처럼 흩날리는 언덕 아래 잔잔한 강물 위로 음악을 실어갔다.
월간 '객석'이 마련한 '길 떠나는 객석'이 첫 행사로 21일 섬진강을 찾았다. 음악가, 시인과 함께 자연 속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오전 7시 서울을 떠난 버스가 전북 임실군 운암초등학교 마암분교에 도착한 것은 오후 1시.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잡은 전교생 17명의 작은 학교다. 이 학교 교사인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손님들을 반갑게 맞았다.
멀리서 오는 동안 양지바른 곳에 지천으로 널린 조팝나무 흰꽃과 얌전한 배꽃, 작고 귀여운 꽃다지 등 봄꽃의 인사를 넉넉히 받았지만, 키가 작달막한 시인의 동그란 얼굴에 피어나는 웃음꽃이 다시금 환했다.
시인은 "요새 한 사흘 날씨가 기가 막히게 좋더니 꽃들이 발광을 했다"며 곳곳이 꽃동산을 이룬 사연을 설명했다.
일행은 먼저 시인이 사는 집을 찾아갔다. 마암분교에서 차로 10분쯤 걸리는 덕치면 진뫼마을, 섬진강과 강 건너 푸른 산을 마주보는 집 마당에서 시인의 늙은 어머니가 떠주는 찬물로 목을 축였다.
집 앞, 시인이 직접 심었다는 아름드리 느티나무 아래서 구수한 동네 이야기를 들었다. 붉은 자운영꽃이 점점이 박혀있고 검은 염소들이 풀을 뜯는 강변에서 일행은 산책을 하거나 봄볕에 따스해진 강물에 들어가 다슬기를 잡으면서 잠시 한가로움을 즐겼다.
오후 3시, 분교 뒷동산 솔숲에서 음악회가 시작됐다. 갓난 아기를 업은 젊은 엄마들과 검게 그을린 얼굴의 동네 아저씨들이 외지서 온 손님들과 나란히 앉아 음악을 들었다.
연주에 앞서 김용택 시인의 시 두 편을, 객석 발행인인 연극배우 윤석화와 시인이 직접 낭송했다. 문익주 양성원의 연주도 좋았지만, 마암분교 전교생의 노래는 가장 큰 박수를 받았다.
그 아이들이 직접 쓴 시에 붙인 사랑스런 노래였다. 올망졸망한 아이들의 꾸밈없는 노래는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특히 '다희랑 창우랑 좋아한대요'라고 놀리는 '담벼락'을 부를 때 스캔들 주인공인 창우의 어리벙벙한 표정이 웃음을 자아냈다.
다희와 창우는 달랑 두 명 뿐인 3학년생이다. 다희는 쑥스러운지 자꾸 배시시 웃는데, 옆에 꼭 붙어선 창우는 넋나간 표정으로 시치미를 뗐다.
여행에 참가한 40대 주부 최재순씨는 "멀리 나와 바람을 쐬고, 시인의 집도 가보고, 솔숲에서 음악을 듣고 하니 재미있고 즐거웠다"며 "마음에 남는 여행이 됐다"고 말했다.
'길 떠나는 객석'은 매달 한 번 길동무를 모은다. 5월 강원 봉평의 허브나라, 6월 전북 청매실농원, 7월 전북 변산반도로 떠나며 피아니스트 김주영, 가수 장사익, 노영심이 각각 동행한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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