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10시30분께 롯데호텔 3층 사파이어볼룸. 취재진이 대거 운집한 틈을 비집고 금융노조 조합원 50여명이 속속 몰려들었다.이날 하오 2시로 예정됐던 국민ㆍ주택은행 합병 본계약이 앞당겨졌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것이다.
단상을 점거한 노조원들은 "강압적인 두 은행 합병은 즉각 철회돼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합병 계약의 두 주인공인 김상훈(金商勳) 국민은행장과 김정태(金正泰) 주택은행장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 다음부터는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는 숨바꼭질이 이어졌다. 노조원들은 두 은행장의 차를 미행하고, 은행장들은 연막전술까지 써가며 이들을 따돌렸다. 그리고 이날 오후 6시40분께 두 은행장은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기습적'으로 본계약을 체결했다.
세계 60위권의 초대형 합병은행 출범은 이렇게 초라하고 볼썽 사나웠다. 이날의 '숨바꼭질 촌극'은 합병은행의 불안한 미래를 예고한다는 점에서 더욱 걱정스러웠다.
합병은행의 성패는 1차적으로 내부단합에 달려있다는 것을 우리는 숱한 합병 사례에서 배워왔다. 지난해 12월 합병 발표 당시부터 무려 4개월여간 두 은행간 흠집내기와 노사 대립이 끊이지않는 마당에 합병 이후 불협화음을 말끔히 씻어낼 수 있을 거라고는 믿기 어렵다.
두 은행 경영진이 적당히 피하는 것만을 최선책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큰 오산이다.
미봉책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위험한 불씨를 그대로 안고 가는 셈이기 때문이다.
노조도 합병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을 인정한다면 이제는 합병은행의 발전을 위한 생산적 대안을 제시해야 할 때다. 노조의 반복되는 상처내기식 소모전이 합병은행을 나락에 빠뜨렸다는 멍에를 짊어질 수는 없지 않은가.
경제부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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