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후생성 장관이 당원투표로 치러진 예비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킨 요인은 한마디로 자민당내의 '변화' 욕구라고 할 수 있다.그는 지난달 전당대회 당시 지방본부 대표들의 잇따른 당지도부 비판을 접하고 바닥의 흐름을 읽었다.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지율이 날로 떨어지는데도 아무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지도부에 대한 불만, 그것을 뒤집으면 하시모토(橋本)파에 대한 불만이다. 그가 선거 전술로 택한 탈(脫)파벌 선언은 이런 불만을 표로 흡수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무대 장치도 맞아떨어졌다. 광역단체별로 1표에 머물렀던 당원표가 3표로 늘어 과거와는 양상이 달라졌다. TV 토론 등 공개 논쟁의 장이 늘어난 것도 세규합보다 대중적 인기를 좇아온 고이즈미 전 장관에게 더없는 기회를 줬다.
한편 하시모토파의 혼란도 빼놓을 수 없다. 파벌의 양대 기둥인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 전 간사장과 아오키 미키오(靑木幹雄) 참의원 간사장은 후보공고 직전까지 신경전을 계속했다. 결과적으로 하시모토파는 지방조직 단속에 힘을 쏟지 못했다. 전통적 지지 기반인 이익단체 대표마저 등을 돌린 것은 오랫동안 이들을 장악해 온 노나카 전 간사장이 사실상 선거에서 손을 놓았음을 보여 준다.
하시모토 장관은 98년 참의원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경력이 있다. 그런 그를 당의 간판으로 삼는 데 불만을 품은 당원들이 중앙파벌의 파괴를 위해 선택한 것이 고이즈미 전 장관인 셈이다. 자민당 바닥의 변화는 국민적 욕구의 반영이라는 해석도 있다.
장기적 경기 침체와 정책 부재가 부른 기성 정치 불신은 지사선거에서 잇따른 무당파 선풍에서 확인되고 있다.
도쿄=황영식특파원
yshwang@hk.co.kr
■고이즈미 1등공신 마키코의원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후보의 예비선 압승은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ㆍ57) 의원의 공이다.
총재선거 공고 직전 여론조사에서 고이즈미 후보의 지지율은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후보와 별 차이가 없었다. 이를 크게 벌린 것은 바로 다나카 의원의 입심이었다. 그는 26일 탄생할 고이즈미 내각에서도 '정부의 입'인 관방장관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
고이즈미 후보의 직선적 언행도 꽤나 눈길을 끌었지만 다나카 의원의 독설에 비하면 '달 앞의 반딧불'이다. 걸걸한 목소리에 투박한 니가타(新潟) 사투리를 섞은 달변으로 그는 수년째 자민당내 인기도 1위를 달리는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특히 총재 경선을 앞둔 연설회에선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ㆍ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 총리까지 도마 위에 올리며 과감하게 당 지도부를 비난, 일본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가 한때 '이상한 사람'(變人)이라고 깎아내렸던 고이즈미 후보를 지원한 것은 아버지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의 복수와 떼어 생각하기 어렵다.
록히드사건 이후 재기를 노리던 다나카 전 총리가 85년 뇌일혈로 쓰러진 것은 다케시타 전 총리의 '반란'이 직접적인 계기였다. 오부치ㆍ하시모토파로 계승된 다케시타파에 대한 뿌리깊은 한을 고이즈미 후보를 통해 풀어낸 것이다.
93년 데릴사위인 남편 나오키(直紀)를 참의원으로 내려 보내고 아버지의 표밭을 이어받아 당선된 이래 내리 3선을 기록했다. 게다가 '다나카의 딸'이라는 간판의 위력도 조금도 줄지 않고 있어 밝은 앞길을 예고하고 있다.
도쿄=황영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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