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열렸던 한국기원 프로기사회 임시 총회가 끝날 무렵 한 참석자로부터 예정에 없던 몇 가지 긴급 안건이 발의됐다. 내용인즉 ▲앞으로 모든 대국실을 금연 구역으로 할 것 ▲현재 1, 2차 예선으로 분리 운영되고 있는 각종 기전 예선을 하나로 통합할 것 ▲지금까지 단위 우선으로 정했던 기사 서열을 입단 연도순으로 바꿀 것 ▲은퇴 기사들에게도 공식 대국 입회인, 지도 다면기 등 한국기원 공식 행사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할 것 등이었다.안건 내용 설명이 끝나자 나른한 파장 분위기였던 총회장 분위기가 갑자기 숙연해졌다. 어찌 보면 별 것 아닌 내용처럼 여겨지지만 바둑계에서는 그 동안 모두들 개선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기사회 내부의 이해가 엇갈리는 부분이 많아 선뜻 내놓고 거론하지 못했던 '뜨거운 감자'들에 대한 처리 방안을 정식 안건으로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제안들은 궁극적으로 기존 단위 제도에 따른 고단자 우대 관행의 전면 철폐를 의미하고 있어 더욱 참석자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예를 들어 통합 예선 실시 주장의 경우 일단 방향은 옳지만 일부 고단자들의 기득권을 빼앗는 셈이어서 그 동안 서로 눈치를 보느라 아무도 이를 공개적으로 거론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드디어 정식으로 공론화한 것이다. 단위와 별 관계가 없을 것 같은 금연 주장도 약간은 말썽의 소지가 있다. 프로기사들 가운데 흡연파들은 대부분 선배 고단자들이므로 전면 금연 조치는 고단자들에게 불리한 조항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기사 서열 기준을 단위에서 입단 연도로 전환키로 한 것 역시 획기적인 방안으로 해석된다. 이는 한편으로 승단이 늦은 고참 기사들에 대한 배려의 의미가 없지 않지만 궁극적으로는 단위 제도 무용론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주목된다.
이날 총회에서는 일단 발의된 안건에 대해 총회 참석자들의 의견을 취합해 보기로 하고 거수 투표 결과 젊은 기사들을 중심으로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고참 기사들의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은데다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 단순 표결로 처리할 안건이 아니라고 보고 추후 재론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통합 예선 실시 등 이번에 제출된 안건들이 현실화할지는 좀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어쨋거나 그 동안 항상 뒤에서만 수근수근 논의되어 왔던 각종 바둑계 현안들이 모처럼 시원하게 공론화되는 것을 보니 새천년을 맞아 한국기원에도 무언가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는가 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