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녀의 보금자리는 어디인가.’‘미아리 소녀’는 23일 부끄러운듯 말을 더듬으며 그저 울기만 했다.
“잘 하려고 했어요. 수없이 다짐하고 마약의 유혹에 맞섰지만...” 윤락과 마약이 흘러넘치는 ‘지옥’을 벗어난 지 고작 18일째. A양은 “다시는 지옥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라는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했다.
요리사가 되겠다는 꿈도, ‘친구’들에게 모범이 되겠다는 다짐도 지키지 못했다. “발 딛고 있는 이 세상 자체가 지옥”이었기 때문이다.
기자가 그의 다급한 목소리를 접한 건 지난 21일 오후4시께. 집에서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던 A양은 뜻밖의 전화를 했다. “아저씨(마약 공급책)가 온 것 같아요. 무서워요…” 대꾸해줄 겨를도 없이 전화는 끊겼다.
신변 위협 때문에 휴대폰까지 해지해야 했던 소녀의 짧은 말에는 긴박함이 묻어있었다.
23일 오전 A양은 약간 들뜬 목소리로 다시 전화를 해왔다. “끌려갔어요. 죽을 힘을 다해 반항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는 마약에 취해 있었다. 희미해지는 정신을 다 잡아 가며 그녀는 “갈 곳이… 갈 곳이 없어요”라고 소리쳤다.
지난 3일 서울 모 정신병원을 찾았던 A양은 보도가 나간 지 이틀만인 12일 강제 퇴원 당했다. 금단 현상을 견디지 못해 간호사에게 대들었다는 이유였다.
A양의 주치의는 “비슷한 환자가 병원에 입원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병원의 규칙을 어긴 A양을 계속 입원시킬 수 없었다”며 “외래 진료를 받게 하는 것도 치료의 일환”이라고 원칙적인 답변만 했다.
하지만 A양은 신장암 수술을 받은 아버지가 누워있는데다, 이미 그의 집을 알고 있는 마약 공급책의 마수를 피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의 재활을 책임질 수 있는 다른 울타리를 수소문했지만 쉽지 않았다.
마약을 경험한 청소년을 받아들이는 청소년 쉼터는 아예 없었고, ‘마약쉼터 요리사’를 꿈꾸는 그녀의 꿈을 이해하며 오전만이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주는 병원도 없었다.
“지방에 있는 병원은 치료라는 이름으로 무조건 감금생활을 강요해요. 4년간 당했던 지옥의 경험을 아무도 진지하게 들어주려 하지 않아요. 전 어린 나이에 마약을 하고 몸을 팔았지만 그저 비행 청소년이란 생각일 뿐인데.”
23일 오후 A양은 위태롭게 ‘뚜뚜’ 거리는 공중전화를 통해 마지막 연락을 해왔다. “아저씨를 피해 지방으로 내려갈 생각이에요. 아무도 도와주지 않지만 약은 반드시 끊을래요.
꼭 ‘마약쉼터의 요리사’가 돼 돌아오고 싶어요.” A양은 미아리에서 배운 듯한 거친 욕설을 어색하게 자신을 내버린 세상을 향해 내뱉으며 전화를 끊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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