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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 75년 독일유학 첫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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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 75년 독일유학 첫수업…

입력
2001.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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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평탄한 삶을 살아왔기에 평생 잊을 수 없는 격한 감동의 순간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다만 있다면 살아가면서 받아온 깊은 문화적 충격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게다.이런 경험들은 1975년 유학을 떠나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무수히 쌓여갔다.

고등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만화를 그려온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그 일을 계속했다.

그러다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어 형이 박사 과정을 밟고있던 독일 뮌스터대학 디자인학부로 유학을 떠났던 것이다.

외국이라곤 처음 온 내가 프랑크푸르트공항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 가장 놀라왔던 것은 정말 외국이 존재하고, 외국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남들이 들으면 웃겠지만, 요즘처럼 해외여행이 일반화하지 않았던 당시에는 외국이란 항상 추상적 존재였고 너무도 먼 곳으로 여겨지던 터였기에, 추상적 존재가 현실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정말 큰 충격이었다.

그 순간부터 무수한 의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왜 이들은 이렇게 살고, 왜 우리와 다르게 생각하고 왜 이처럼 행동하는가.

이런 의문들을 파헤쳐 나가는 과정이 바로 '먼나라 이웃나라'라는 만화를 만들게 된 결정적 동기가 되었다.

문화적 충격은 수업 첫 시간에도 받았다. 서른이 다 된 나이에 열두어살 어린 독일 학생들과 수업을 받는데 첫 시간에 들어온 헤르만교수가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예술가가 아닙니다. 디자인은 서비스업입니다. 이를 명심하십시오."

디자인은 예술이고, 나도 당연히 '품격있는' 예술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서비스업이라니. 그때만해도 사회 전체에 서비스업이란 식당 같은 데서 심부름이나 하는 일이라는 편견이 있었기에 충격은 컸다. 디자인을 예술로 여기기는 독일 학생들도 마찬가지였기에 그들 또한 이 말에 적잖이 놀랐다.

그러나 헤르만교수의 한마디는 내 인생의 틀 자체를 개조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술가와 달리 서비스업 종사자는 봉사정신을 신조로 삼아야 하고 늘 겸손해야 하며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는 것.

이는 견해에 따라 다르겠지만 자존심을 생명으로 하고 자기 내면의 세계에 더욱 몰두하는 예술가 정신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나는 그 뒤 한시도 그 교수님의 말씀을 잊은 적이 없고 지금 몸담고 있는 디자인학부 입학생들에게도 언제나 이 말을 가장 먼저 해주고 있다. 예술대학에 소속돼 있기 때문에 자칫 자신을 예술가 후보로 생각하는 오류를 시정해주기 위함이다.

이원복·만화가ㆍ덕성여대 산업미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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