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회 정보통신의 날에 돌아본 117년사22일은 제46회 '정보통신의 날'.
국내에 근대 정보통신 제도가 도입된 지 117년 되는 날이다. 올해는 특히 10대 지식정보 강국 도약을 목표로 한 'e-코리아 건설' 프로젝트에 착수한 첫 해 여서 의미가 더 깊다. 국내 정보통신 117년사를 되짚어본다.
▽근대 우정사업 태동
"각국과 통상한 이래 관상(官商)의 신식(信息)이 번잡하여지니 그 뜻을 속히 체전(遞傳)하지 않으면 멀고 가까운 곳이 일체로 될 수 없다. 우정총국을 설립, 각 항구에 왕래하는 신서를 맡아 전하고 내지 우편도 확장하여 공공의 이익을 거두도록 하라."
1884년 4월22일 고종이 내린 칙명 내용이다. 정부는 이를 우정사업의 시초로 보고, 1956년 '체신의 날'로 정했다. 94년 정보통신부 발족과 함께 '정보통신의 날'로 바뀌었다.
▽독점에서 무한경쟁시대로
1900년 최초의 독립 체신관청 '통신원'이 발족한 이래 80여년간 통신산업은 정부 독점 하에 놓여있었다.
81년 12월 한국전기통신공사가 설립되고 91년 데이콤이 국제전화 사업에 뛰어들면서 독점 시대가 막을 내렸다. 그 후 한국이동통신(SK텔레콤) 민영화, 제2 이동전화사업자(신세기통신) 선정, 시내ㆍ외 전화 경쟁체제 전환, PCS 사업자 선정 등이 잇따르면서 무한경쟁 시대로 접어들었다.
▽국가정보화 기반 마련
정부는 96년 정보화촉진 기본계획을 마련하고, 대대적인 정보통신(IT) 인프라 확충에 나섰다. 2010년까지 3단계에 걸쳐 전국 곳곳을 광케이블로 잇는 초고속 정보망을 구축한다는 것. 지난해에는 이를 5년 앞당겨 2005년까지 마무리하기로 했다.
올해부터는 지식정보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e-코리아 건설'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전자정부 구축, 전국 1만여 개 초ㆍ중ㆍ고교에 무료 인터넷 서비스 제공, 농어촌컴퓨터교실 주부인터넷교실 등 소외계층 정보화교육 강화 등. 이와 함께 정보화 역기능 해소, IT 전문인력 양성, IT 핵심기술 개발 지원, 중소ㆍ벤처 육성 사업 등도 추진중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동안 IT 인프라 구축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이를 국가경쟁력 강화,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가려면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당장 시급한 것이 통신산업 체질 강화다. 통신서비스 시장의 경우 정부의 경쟁 정책 실패로 한국통신과 SK텔레콤을 제외한 대다수 업체가 퇴출 위기에 내몰려있다.
장비제조나 소프트웨어, 컨텐츠 산업도 양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여전히 '우물안 개구리'에 머물고 있다.
한 정보통신 전문가는 "그동안 우리나라가 IT 분야에서 일군 성과는 충분히 자랑할 만하지만 이제 겨우 IT 강국으로 가는 문턱에 닿은 것"이라면서 "양적 팽창을 질적 성장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정부와 업계 모두 내실을 다지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우정사업 발달사
1884년 설치된 우정총국은 그 해 11월 근대식 우편업무를 시작했다가 18일만에 문을 닫았다. 1895년 한성우체사를 설치, 업무를 재개하고 1900년 만국우편연합에 가입했다.
45년 해방 당시 646곳에 불과하던 우체국은 지난해 말 현재 우편취급소를 포함해 3,685곳으로 늘어났다. 우편물 수도 급증해 국내우편물은 61년 1억5,398만 통에서 지난해 44억8,000만 통으로, 국제우편물은 807만 통에서 6,518만 통으로 증가했다.
양적 성장 외에도 우편업무 전산화가 꾸준히 추진돼 대부분의 업무를 전산시스템으로 운용하고 있다. 우편주문판매, 우체국 인터넷 쇼핑몰, 국제특급우편, 기차표ㆍ항공권ㆍ공연티켓 예매 등 서비스 내용도 다양해졌다. 곧 인터넷 주문우표 서비스도 제공할 예정.
한때 농협에 이관했다 83년 다시 시작한 우체국 금융도 업무 영역을 넓혀가며 성업중이다.
지난해 말 우체국예금 잔액은 23조7,907억원으로, 은행예금의 2.7%를 차지했다.
보험도 가입자 420만 명, 계약고 47조8,436억원에 달한다. 최근에는 시중 은행들과 잇따라 업무 제휴, 은행 고객들이 우체국 창구에서 입ㆍ출금 등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통신서비스업 발달사
근대 통신의 시초는 1885년 서울-인천간 전신 개통으로, 전화는 1896년 궁내부에 처음 설치됐다. 당시 전화는 '텔레폰'을 음역한 '덕진풍', 말 전하는 기계라는 뜻의 '전어기'(傳語機)'로 불렸다.
1902년 서울-인천 전화가 개통되면서 일반인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45년 해방 당시 전화 가입자는 4만4,800여명으로, 70% 이상이 일본인이었다.
60년대 경제 개발과 함께 가입자가 폭증했으나 시설이 달려 전화 한 대 값이 집 한 채 값을 웃돌기도 했다. 80년대 국산 교환기 개발을 계기로 전화부족이 해소됐다. 88년 가입자 1,000만 명을 돌파, '1가구 1전화 시대'를 열었다. 지난해 말 현재 가입자는 2,157만 명.
이동전화는 84년 한국이동통신(SK텔레콤)이 제공한 카폰 서비스가 최초로, 96년 세계 최초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상용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급성장 발판을 마련했다.
97년 PCS 도입과 함께 가입자가 급증, 99년 8월 2,000만 명을 돌파했고 유선전화까지 추월했다.
이밖에 별정통신 사업자, 부가통신 사업자가 잇따라 등장해 음성전화정보, 인터넷폰, 무선데이터 통신 등 다양한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인터넷 발달사
1982년 서울대와 전자통신연구원의 전신인 KIET를 연결한 1,200bps급 'SDN'이 국내 인터넷의 기원. 그 후 대학과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한 전산망이 확대됐지만 텍스트 전송에 머물렀다. 국내에 본격적인 인터넷 시대가 열린 것은 ISP 업체들이 등장한 94년 이후다.
98년 310만 명에 불과했던 인터넷 이용 인구는 99년 1,000만 명, 올 들어 2,000만 명을 돌파했다. 현재 만7세 이상 가운데 월 평균 1회 이상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은 2,093만 명에 달한다.
최근에는 특히 여성 이용자가 크게 늘어 전체 인터넷 이용 인구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99년 10월 33.1%에서 3월 42.9%로 껑충 뛰었다. 또 중ㆍ고ㆍ대학 등 재학생들의 인터넷 이용률이 모두 95%를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초고속 인터넷 보급 속도도 눈부실 정도다. 3월 말 현재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는 500만명으로, 지난해 5월 100만 명에서 10개월새 5배가 늘었다.
접속방식별로는 ADSL이 280만명으로 가장 많고, 케이블TV망 175만 명, LAN방식 49만 명 등. 그러나 업체간 경쟁이 과열되면서 상당수 업체가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등 부작용도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46회 정보통신의 날 기념식…59명 훈·포상, 표창
제46회 정보통신의 날 기념식이 23일 오전 정보통신부 대강당에서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양승택(梁承澤) 정통부 장관은 기념사에서 "그동안 정보통신(IT) 분야 발전 성과를 토대로 IT 전문인력 양성과 핵심 기술 개발, IT 기업의 해외 진출을 적극 지원해 우리 경제가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발판으로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이정호(李正浩) 서울대 교수가 황조근정훈장, 정통부 손홍(孫泓) 정보통신정책국장과 노희도 국제협력관이 홍조근정훈장, 이남규(李南圭) 전남체신청 장성우체국 정보통신원이 옥조근정훈장을 받는 등 59명이 훈ㆍ포장 및 표창을 받았다.
<훈ㆍ포장자 명단>훈ㆍ포장자>
◆동탑산업훈장 성인수(成寅洙) 한국통신 상무 ◆근정포장 ▦김경수(金慶銖) 정통부 서기관 ▦임정수(林正洙) 정통부 사무관 ▦신태균(申泰均) 서울체신청 우정관리1과장 ▦전대홍(全大洪) 부산체신청 업무1과장 ▦김영평(金榮枰) 고려대 교수 ◆산업포장 ▦이번(李蕃)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원천기술연구소장 ▦김일중(金日中) SK텔레콤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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