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중국의 톈안먼(天安門) 사태 당시 자오쯔양(趙紫陽) 공산당 총서기가 학생들을 무력진압하지 말도록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과 강경파 지도자들을 설득했으나 실패로 돌아간 사실을 입증해주는 문서가 CNN 등 미국 언론들에 의해 23일 또다시 공개됐다.趙 총서기의 연설문 작성을 담당했던 비서 바오퉁(鮑 丹+터럭 삼)이 그 해 9월 감옥에서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이 문서는 올 초 발간된 '톈안먼 페이퍼'의 주요 내용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미국 언론들은 분석했다.
이 문서는 특히 趙 총서기의 승인 없이 게재된 4월 26일의 인민일보 사설이 사태를 격화시킨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4월 15일 후야오방(胡耀邦) 당 총서기 사망 이후 시위가 시작된 11일 후 최고지도자 鄧은 관영 인민일보에 학생들의 시위를 '반정부', '반혁명'으로 비판하는 사설을 게재토록 했다. 당시 북한을 방문 중이던 趙 총서기에게 鮑는 "사설이 매우 거칠고 합리적인 근거와 분석을 결여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趙 전 총서기도 이에 동의했다. 5월 4일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아시아개발은행(ADB) 총회 연설에서 趙 총서기는 당국이 학생들의 애국심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단식농성을 시작한 5월 12일 鮑는 인민일보 편집장에게 시위대의 분노를 가라앉힐 기사를 게재하라고 촉구했으며, 하루 뒤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가 부패추방과 정치개혁 등 학생들의 요구사항을 논의할 회의를 개최할 것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 문서는 학생들의 운명이 5월 17일 鄧의 집에서 열린 당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결정됐다고 밝히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 趙 총서기는 학생들과 타협해야 한다고 최고지도자 鄧과 리펑(李鵬) 총리 등 강경파 지도자들을 설득했으나 실패했다. 그는 회의에서 돌아와 곧바로 鮑에게 사직서 초안을 잡으라고 지시했다. 이 때부터 톈안먼의 유혈사태는 기정사실이 되었다. 양상쿤(陽尙昆) 국가주석은 趙 총서기의 사임이 학생들의 시위를 더욱 격화 시킬 것이라며 사직서를 반려했으나 그의 실각은 분명해졌다.
5월 28일 국가기밀 누설 혐의로 체포된 鮑는 趙 총서기나 자신이 학생들과 직접 연계돼있지는 않았다고 분명히 밝히고, 결코 반당 음모를 꾸민 적이 없다고 말했다. 鮑는 현재 베이징에서 당국의 엄중한 감시를 받으며 살고 있다.
이 문서를 유출한 익명의 중국정부 관리는 "6ㆍ 4 운동의 진실을 더 알리고 싶다"고 유출 이유를 밝혔으나 중국 전문가들은 중국 지도부 교체를 앞두고 내분이 일고 있는 조짐이라고 해석했다.
■자오쯔양 근황
자오쯔양(趙紫陽)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톈안먼(天安門) 사태로 실각한 후 베이징(北京)에서 12년째 가택연금 생활을 하고 있다.
수년 전 가택연금 해제설이 나돌기도 했으나 지난해 8월 장쩌민(江澤民) 주석이 '사회 안정을 위협하는 趙 도당의 잔재들에 대한 감시 강화'를 지시하는 등 그와 추종자들에 대한 감시가 더욱 강화됐다.
趙 전 총서기는 이 달초 당국의 삼엄한 경계를 뚫고 찾아온 중국어판 인터넷매체인 둬웨이(多維)신문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6ㆍ4 민주화운동에 대한 인민들의 관심이 여전히 식지 않아 기쁘고 위안이 된다"고 소회를 밝혔다.
홍콩 언론들에 따르면 지난 해 7월 당국의 허가를 받아 1970년대 말에 당 총서기로 재직했던 쓰촨(四川)성을 다녀온 적이 있으며, 폐 질환이 있긴 하지만 건강한 편이다.
남경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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