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국회가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여야가 각종 개혁법안에 대해 '빅딜'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껍데기만 남은' 법을 양산할 것이란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특히 23일 여야가 합의한 자금세탁방지법(FIU법)은 법안 조율과정에서 정치권의 이해에 따라 법안의 기본 골격까지 훼손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여야는 이날 3당 총무, 재경ㆍ법사위 간사가 참여한 9인 소위를 열어 FIU법안에 들어있던 계좌추적조항을 삭제했다.
또 불법 거래 의심이 있으면 FIU(금융정보분석원)가 정치자금법위반의 경우 선관위에, 탈세는 국세청 등에 통보하기로 합의하는 대신 야당은 '심의위원회' 로 만들자는 주장과 정치자금의 경우 본인에게 통보해야 한다는 주장을 철회했다.
갈길 바쁜 여당은 야당측의 계좌추적 조항 삭제 요구에 선뜻 동의했다. 회담 후 오히려 여당 의원들이 나서서 "영장주의의 예외를 늘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변했다. 여야 공히 '정치인의 계좌를 뒤지는 것이 싫다'는 방어논리가 작용한 것이다.
그러나 계좌추적 조항은 FIU의 활동을 위해 필수적인 사항. 금융기관 창구에서 '이상한 거래'를 발견, FIU에 보고해 오면 관련 계좌추적을 통해 전주를 확인하는 등 자금 성격을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당초의 정부안이 조폭ㆍ마약자금 등을 대상으로 한 '깡패잡는 법'일 때는 별다른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치자금이 포함되자 부랴부랴 '계좌추적이 남용될 수 있다'며 이를 삭제한 것이다.
이와 관련, 시만단체 등에선 "불법 정치자금일 경우 선관위에게 통보하라고 하지만 가ㆍ차명 계좌에서 나온 자금을 어떻게 정치자금인지, 마약자금인지 확인할 수 있겠느냐"며 "정치권의 이해에 따라 본말이 전도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측에서도 "일은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결과적으로 FIU의 '여과기능'이 사라져 상당수의 적법 거래도 '의심이 있다'는 이유로 바로 검찰과 국세청 등 사정기관으로 넘겨질 위험성도 커졌다.
한편, 특검제 도입과 조사권 부여 등이 걸림돌이 되고 있는 인권법과 부패기본법 등 개혁입법도 여야간 막바지 협상과정에서 당초 취지보다 후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고, 연기금 주식투자 허용여부, 국가채무 규정 등이 쟁점으로 남아있는 재정 3법도 빅딜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태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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