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술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알칼리성이라 뒤끝이 깨끗하고, 그윽하면서도 자연스러운 풍미가 매력이죠."전통약주 제조업체 국순당의 마케팅 담당자가 말하는 우리 술 예찬론이다. 고려시대 백하주를 현대적으로 재현한 술 '백세주'로 유명한 이 회사의 올해 매출 예상액은 1,500억 원.
1998년 207억원, 99년 478억원, 2000년엔 656억원으로 해마다 두 곱절씩 초고속 성장을 질주하고 있다.
10가지 한약재로 빚었다는 백세주는 요즘 주당들 사이에 '오십세주'(백세주와 소주를 반반씩 섞은 술)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낼 정도로 대중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주된 소비층도 몇 해 전까지만 해도 50~60대 장년층이 주류였지만 최근엔 30대 직장인과 20대 대학생들로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와인처럼 섬세하지도, 브랜디처럼 화려하지도 못한 술. 군데군데 숭숭 구멍이 뚫린 옹기처럼 투박하면서도 자연스런 느낌을 지닌 우리의 전통술.
현란한 서양술에 밀려 자리를 빼앗기긴 했지만 오랜 역사와 전통 속에 태어난 우리 토속주들이 신세대 애주가들의 입맛을 새롭게 사로잡고 있다.
쌀과 누룩을 기본으로 계절마다 제철 재료를 섞어 정성스럽게 술을 빚었던 가양(家釀)의 손 맛과 기품이 술 시장에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전통주의 종류와 특징
맥주나 위스키 같은 서양의 곡주가 술의 발효를 위해 맥아(麥芽렛낢綬?를 사용하는 것과 달리 우리 전통술은 누룩을 쓰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누룩 중에서도 밀을 껍질째 갈아 반죽한 뒤 곰팡이를 피워 만든 '막누룩'을 주로 쓰는데 이는 쌀로 만든 일본 누룩 '입국(粒麴)'과도 구별된다.
전통주는 제조방법에 따라 쌀과 누룩을 발효시킨 술밑(酒母)을 맑게 여과한 약주(혹은 청주), 술밑을 증류한 소주,약주를 거르고 난 찌꺼기에 물을 섞어 거른 탁주(막걸리)로 분류된다.
각각의 술들은 다시 부원료로 어떤 것을 배합하느냐에 따라 백하주,국화주, 이강주, 복분자주, 흑미주,산사춘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요즘엔 백화점이나 할인매장의 주류 코너에 나가면 갖가지 풍미를 느낄 수 있는 민속주들을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생쌀 빚기'라는 독특한 발효법을 사용하는 배상면주가에서는 찹쌀로 빚은 백하주,붉은 누룩(홍국)을 사용한 천대홍주,흑미를 발효시킨 흑미주, 구기자 천궁 인심 등 18가지 한약재를 우려낸 활인18품 등의 약주를 시판중이다.
지역별로는 중요무형문화재 86호로 지정된 증류식 소주 문배주(평양)를 비롯해 배와 생강을 넣어 만드는 전주 이강주, 누룩에 찹쌀로 찐 술밥을 섞어 숙성시킨 김천 과하주,지리산의 서리 맞은 야생국화로 빚은 함양 국화주, 보리를 주원료로 한 진도 홍주 등이 대표적인 브랜드로 꼽히고 있다.
이밖에 진달래꽃을 넣어 빚은 당진 면천의 두견주,산딸기(복분자)의 과즙을 배양한 뒤 누룩을 섞어 숙성시킨 고창 복분자주,율무를 증류시킨 용인 옥로주 등도 전통이 깊은 민속주이다.
■전통약주 제대로 음미하기
전문가들은 "서양술은 먹기 전에 코로 향을 맡지만 우리 술은 마시고 난 후 입안에 남은 향으로 음미하는 술"이라고 말한다.
잘 익은 우리술엔 단 맛,신 맛,떫은 맛,구수한 맛,쓴 맛,매운 맛 등 6가지 맛이 녹아 있다고 한다.이 맛들이 두드러지지 않고 함께 어우러져 입안에 한동안 여운을 남기는 술이 좋은 술이다.
발효주라는 점에서 서양의 와인과 유사한 전통약주는 와인처럼 격식을 갖추지 않더라도 색깔과 맛,향을 함께 음미하면 한결 운치가 있다.
전통 약주는 전혀 과일을 사용하지 않은 술이라도 사과나 수박 같은 과일향이 나는 것이 특징. 누룩의 밀기울 성분이 발효되어 생성하는 향기로 향이 강할수록 진한 맛이 난다.
약주는 부재료에 따라 색깔이 좌우되기도 하지만 대체로 황금색을 띠는 술이 많은데 호박빛에서 짙은 담갈색까지 농도가 다양하다.
흔히 색이 엷을수록 담백하며,진할수록 맛도 진하고 오래된 술로 보면 무방하다. 전통 약주는 섭씨 8도로 차게 해서 먹는 것이 보통.
변형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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