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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숭호가 만난 사람] 장묘문화개혁 협의회 박복순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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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숭호가 만난 사람] 장묘문화개혁 협의회 박복순 사무총장

입력
2001.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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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서울시 어디에 화장장과 납골당, 장례식장이 들어서는 '추모공원'을 만드느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서울시가 후보지 열 세 곳을 정해 공청회를 했더니 해당 지역에서는 저마다 이런 저런 이유를 내세워 우리 동네는 안 된다고 나선다.

특히 화장장에 대한 반대가 격렬하다. 4년 전만해도 30%가 안되던 화장률이 50%를 넘었고 죽은 후 화장을 해달라는 사람도 80%나 될 정도로 화장에 대한 인식은 크게 개선됐는데 정작 화장할 터는 구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장묘문화개혁범국민협의회(장개협) 사무총장 박복순(朴福淳ㆍ50)씨는 "당장 주민들의 반대야 오해에서 비롯된 측면이 큰 만큼 노력에 따라 이해를 구할 수는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죽음에 대한 우리 국민의 부정적인 생각이 바뀌어야만 화장장을 비롯한 장묘문화가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유권자연맹 사무총장을 거쳐 8년간 정무2장관 비서관을 지냈던 그는 1998년 장개협이 발족하면서 사무총장으로 영입돼 장묘문화개선을 위한 공청회와 세미나, 외국 장묘장 사진전, 각종 홍보책자 발간 등의 일을 맡아오면서 장묘문화에 대한 전문가가 된 사람이다.

_국민들의 화장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는데 이유가 무언가.

"97년만 해도 30%가 안됐던 서울시의 화장률은 지난해 50%가 넘었다. 전국적으로도 7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화장률은 매년 1% 증가에 그쳤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는 4~5%씩 증가하고 있다.

또 최근 우리가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80% 이상이 죽은 후 화장을 해도 좋다고 응답했다.

화장에 대한 인식이 이처럼 개선된 것은 매장으로 인해 묘지가 국토를 크게 훼손하고 있다는 언론보도와 사회단체의 계몽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묘지관리의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 더 큰 이유라고 본다.

핵가족화와 도시화 때문에 예전처럼 후손들이 성묘를 하는 등 묘지를 관리하기가 갈수록 힘들어졌기 때문에 화장을 한 후 거주지 부근 납골당이나 납골묘에 모시려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_문제는 화장이 늘어났는데 정작 화장할 곳이 없다는 것 아닌가. 님비현상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화장장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맞지 않나? 화장장이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지고, 오염문제도 발생하는 건 사실 아닌가?

"우선 오염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재를 산이나 강에 뿌린다고 보기 때문인데 이는 TV드라마가 만들어낸 오해이다.

관련 법규가 없었던 예전에는 뼛가루를 뿌린 적이 있지만 요즘은 화장 후 뼈를 가루로 만들지 않고 작은 알갱이 형태로 쇄골(碎骨)을 한다.

잿가루가 없는 것이다. 그 다음에, 그 쇄골 형태의 알갱이를 납골당이나 납골묘에 안치하지 않고 뿌리기를 원할 경우, 즉 산골(散骨)을 원할 경우 그 장소도 정해져 있다.

서울시는 새로 만들 화장장에 유택동산이라는 합동산골장소를 만들어 유족들이 산골을 한 후 모인 쇄골을 다른 장소에 묻을 계획이다.

합동산골장소는 미국 묘지에 빠짐 없이 있는 'Scattering Ash Place'와 같은 것이다. 부산시는 유족들이 아예 화장장 밖으로 유골을 가져나가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뼛가루 때문에 상수원이 오염되고, 공기가 더러워진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그는 분당에는 '서울 강남에 화장장이 들어서면 선풍기로 뼛가루를 날려 분당 공기마저 오염된다는 프래카드가 붙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흥분하기도 했다.)

_화장장이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지고, 주변 교통이 혼잡해진다는 것도 반대 이유인데?

"화장장 바로 인접한 부동산은 영향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서울 서초구 청계산 부근에 화장장이 들어선다고 해서 그곳과 한참 떨어진 서초구 잠원동이나, 반포, 서초동의 아파트 값이 떨어진다고 보나? 절대 영향이 없을 것이다.

화장장 인접 지역도 부동산 가격 하락 등을 고려, 당국이 인센티브를 제시하면 주민들은 이 인센티브가 충분한가 아닌가를 놓고 당국과 토론을 가진 후 받아들일 것인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주민들이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는 정책은 정책이 아니다. 서울의 추모공원 후보지로 떠오른 열 세 지역 모두가 당국에 지금 당장 인센티브를 제시하면 검토해보겠다고 하는데 이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최종 후보지를 4~5 곳으로 좁힌 후 구체적 인센티브를 개발해 토론을 벌이는 것이 합리적 수순이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장묘문화가 발전한 국가에는 화장장 등 납골시설이 들어서있다는 이유로 집값이 떨어진 곳은 없다.

장묘문화가 발달한 서구에서는 오히려 공원화 되어있고, 성묘가 쉽다는 이유로 묘지부근의 집값이 더 비싼 곳이 많다."

_화장장이 아이들 교육에 해가 된다는 주장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정말 이유가 안 되는 이유라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자. 동네에 꽃상여가 나가면 아이들은 큰 구경거리라고 생각하고 달려나가곤 했는데 그게 우리 교육에 나쁜 해를 끼쳤나? 나는 지금도 내 눈에는 내 고향 통영의 화려한 꽃상여와 상여 뒤를 따르는 늘어진 만장이 보이고, 상여소리가 귀에 들린다.

그런 걸 보면서 죽음에 대해서 나름대로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었던 게 우리 어린 시절 아닌가? 한 인간이 삶을 마치고 마지막 가는 길을 보는 게 왜 교육에 해롭다는 건가? 정말 이해가 안 된다."

그러면서 그는 "죽음에 대한 우리 국민의 부정적인 생각이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_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라는 게 무슨 말인가. 죽음을 두려워 하지 말라는 건가?

"어느 누가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을 수가 있나? 그런 뜻이 아니다. 아직 정리가 안 돼 한 마디로 말하긴 어렵지만, 예를 들어 우리의 의식에는 죽으면 귀신이 된다는 생각이 뿌리 깊은데 귀신은 한을 품고 있으며, 좋은 것보다는 나쁜 것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러니 부모가 돌아가셔도 그 시신은 무섭게 생각하고, 풍수지리설에 따른 발복사상에 젖어있으면서도 묘자리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찾아온 게 우리나라 장묘문화라고 생각한다.

죽음에 대한 이런 생각이 바뀌면 죽음에 따르는 시설, 즉 화장장에 대한 인식도 바뀔 거라고 본다."

_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의식은 어떻게 바꿀 수가 있나.

"결국 죽음을 단절이라고 생각하는 게 문제인데, 산 자와 죽은 자가 연결돼있다고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 방법 아닐까 한다.

구체적으로는 교육을 통하면 될 것 같은데 프랑스에는 학교는 물론 사회교육체계에도 죽음에 대한 프로그램이 있으며 사학과(死學科)를 둔 대학도 있다고 들었다.

죽음의 의미, 죽음과 남은 자 등에 대한 걸 가르친다고 하더라. 학생들에게 유언장을 써보도록 하는 것도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죽음을 생각해본 사람은 자신의 삶에 더 진지해진다는 보고도 있다."

_프랑스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서구에서 장묘문화가 발달한 이유는 뭔가?

"서구에서는 100년 전에 장묘제도에 관한 현대적 법규를 만들었다. 환경오염방지 때문이다. 묘지가 환경을 훼손한다는 점도 중요하게 보았지만 매장보다 화장이 더 위생적이라는 측면을 중시했다. 시신을 태우면 병균도 타서 없어진다고 본 것이다.

시신이 썩으면 각종 미생물이 발생, 땅을 기름지게 한다는 시각도 있지만 환경훼손, 위생 등 전반적으로는 화장이 매장보다 장점이 있다고 본 것이다. 종교적인 이유는 없다."

_죽음에 대한 인식이 바뀌려면 오래 걸릴 것이다. 지금 당장 장묘문화 개선을 위해 해야 할 정책은 무엇인가.

"행정당국이 화장장, 납골당을 쓰레기소각장과 핵폐기물처리시설과 함께 혐오시설로 분류하고 있는데 당장 복지시설, 생활필수시설로 분류하도록 해야 한다.

당국이 혐오시설로 분류해놓고 시민들에게 받아들이라고 해서 되겠는가. 이에 앞서 전국의 화장장을 최첨단화 해야 한다. 일부 대도시 화장장을 제외한 나머지 화장장은 말 그대로 혐오시설이다.

낡았고, 분위기가 음침하며 연기가 풀풀 난다. 그런 이미지가 남아있으니 서울시민들도 화장장이라고 하면 혐오시설로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

_그 다음은?

"장묘업무 전담부서가 없다. 보건복지부의 경우 지금은 노인복지과가 장묘업무를 맡고 있는데 내가 처음 장개협 사무총장으로 왔을 땐 가정복지과가 맡았고, 다음엔 복지지원과가 맡았다.

3년도 안 되는 사이 주무부서가 3번이나 바뀌었다. 담당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무관 한명에 주무 한 명이 전부다. 재수없어 맡는 직책이라고 생각 하는 듯하다.

주무부서 이야기를 하는 건 정부가 아직도 장묘문제를 심각하게 보지 않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정부가 처음부터 묘지문제를 국가적으로 관리해왔더라면 요즘 같은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국민을 나무랄 일이 아니다.

개인묘지를 허용하지 않고 집단화해서 관리했더라면 묘지 때문에 국토가 훼손되고 있다는 비난도 나오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화장이 중요하느니 화장터를 짓느니 마느니 하는 이야기도 안 나왔을 것이다. 장묘에 관한 법률은 있었지만 감독 집행할 공무원이 없으니 결국 묘지가 국토를 잠식하게 된 것이다."

_주민들의 반대가 저렇게 심한데 정말 서울시에 화장장이 들어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서울시장의 의지에 달려있다. 화장장이 없어 시민이 겪는 불편이 얼마나 큰가.

벽제 화장장의 화장로(火葬爐) 하나가 하루에 처리하는 유해는 5~6구인데 이는 적정용량인 하루 2구의 3배나 된다. 일본에서는 화장로 하나로 하루 1.6구의 유해를 처리하고 있다.

그러니 기계에 과부하가 걸려 금방 고장이 나고, 연기가 나는 등 말썽이 생긴다. 또 아침에 발인을 하고도 화장을 제 때 못해 저녁까지 기다려야 하는 화장예약제란 것도 생겨나지 않았나? 말이 예약제이지, 시간의 강제배분 아닌가.

어쨌든 인구 1천만명이 넘는 도시에 화장장 하나 없는 도시는 세계에서 서울 뿐이라는 점을 꼭 써달라!"

●약력

서울대학교 가정관리학과 졸업 1974

이천 양정여자종합고교 교사 1974~1977

한국여성유권자연맹 사무총장 1983~1990

제2정무장관실 장관비서관 1990~1998

한국장묘문화개선범국민협의회 사무총장 1998~현재

한국장례문화학회 이사 2000~현재

서울보건대학 장례지도과 겸임교수 2001.3~

편집국 부국장

so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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