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일 국세청을 앞세워 고리 사채업자에 대한 전면전을 선포, 사채시장이 초긴장 상태에 돌입했다.국세청이 "폭력을 행사하거나 신체 포기각서를 요구하는 등 반인륜적 범죄행위를 일삼는 악덕 업자만을 단속하겠다"고 밝혔으나 자칫 불똥이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금요일 오후의 전격 작전
서울 강남 등 수도권 지역 사채업계는 국세청이 20일 오후 2시 기습적으로 155명의 사채업자 사무실을 급습, 회계장부와 거래자료를 압수하는 등 강공에 나서자 크게 긴장하고 있다.
사채업자에 대한 전국적 규모의 특별 세무조사가 전례가 없는 일인데다가 여론이 극도로 악화할 경우 6개월 이상의 개점휴업이 불가피한 상황까지 우려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불법 혐의에 관련됐다는 소문이 퍼진 일부 업자들의 경우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잠수'라도 해야 겠다"며 은밀히 신변정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사채업계의 비밀ㆍ다중구조
사채업계 움직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정부가 내놓은 세무조사, 사채 이자제한 등의 대책이 비밀ㆍ다중구조로 이뤄진 사채업계의 기본 구조를 깨뜨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전주(錢主)의 돈이 일반인에게 대출되기까지 5~6단계를 거치는 등 복잡하고 은밀하게 유통돼 실제 전주를 밝혀내기가 어렵다"고 분석했다.
강남 사채업계의 한 관계자 역시 "강남 사채업계의 경우 평균 대출금리는 월 7%이지만 이중 3%만이 전주에게 돌아가고 나머지 4%는 중간단계 브로커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누구를 위한 단속인가
사채업계에서는 국세청 조사가 사채업계의 피라미드 구조 밑바닥에 존재하는 브로커와 수수료를 받고 명의를 빌려준 '깃털'들만 처벌하는 선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사채업자가 세무조사를 피하기 위해 이중장부를 작성, 사무실이나 집이 아닌 제3의 장소에 보관하고 있었다"며 "국세청이 핵심 관련자료를 압수하고 세무조사를 전주까지 확대하지 않는 한 악덕 사채의 뿌리까지는 뽑을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일부 사채업자들은 '서민의 고통을 덜어 주겠다'는 정부 대책이 결국 서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한 관계자는 "지난해 월 15%였던 대출이자가 사채업자들의 경쟁으로 월 7%까지 내려가는 등 사채업계도 경쟁원리가 적용되는 시장인데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하면 그 피해는 경제적 약자인 서민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단속으로 사채시장이 위축되면 대출금리는 위험 프리미엄까지 가산돼 더욱 높아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강남역 근처에서 사무실을 운영하면 백억원대의 자금을 굴리는 한 사채업자 역시 "경기 악화로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며 "정부의 직접 통제보다 시급한 것은 은행이 금고에 넘쳐 나는 돈을 자금 압박을 받는 서민들에게 빌려줄 수 있도록 자금경색을 해소하는 근본적 대책"이라고 말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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