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사와 한국과학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월례과학강연 '사이언스 어드벤처 21'이 과학의 날인 21일 6번째 강연을 마침으로써 첫 1년의 일정 중 절반의 탐험을 마쳤다.2000년 11월 '우주의 나이는 몇 살인가'라는 주제를 시작으로 길을 떠난 강연회는 폭넓은 주제로 전공학도부터 초중고 학생,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과학 지식의 갈증을 채워 주었다. 강연회에는 많은 단골손님도 생겨났다.이중 5명을 만났다.
■청중 5인이 말하는 '사이언스 어드벤처21'
○이승근(16ㆍ서울 용산고 1)
"강연주제와 관련된 책을 미리 보고, 질문거리를 정리해둬요." 또래보다 어려보였지만 이승근 군은 "과학지성과 직접 만나는 기회를 허투루 보낼 수 없다"고 야무지게 말했다. 1,3,4회 강연에서 날카로운 질문으로 감탄을 자아냈던 학생이다.
"과학잡지나 책에서 이해하지 못한 내용을 풀 수 있어서 질의시간을 가장 기다려요." 다른 단골참가자들과도 눈인사 정도는 하고 지낸다고.
물리 중에서도 특히 양자역학을 관심분야로 꼬집어 말하는 이군. "시험기간에도 교과서보다 과학잡지를 더 가까이 둡니다."
과학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 서울 한성과학고에서 실시하는 발명교실에 참가하고, 과학잡지나 과학다큐멘터리도 즐겨보고, 인터넷 과학커뮤니티도 뒤져본다. 이군은 "초등학생 등 어린 동생들이 과학에 관심이 많은 것은 대견하지만, 강연 분위기가 흐트러질 때는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박대종(조선대 항공우주학과 휴학중)
"고체로켓을 제작할 때 어떤 경화제를 씁니까? 솔비틀은 괜찮다고 알고 있는데요." "불안정한 경화제를 쓰면 폭발사고 위험이 있어. 나도 한쪽 귀를 다쳤지."
과학의 날인 21일 대전의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열린 6회 강연에 참석한 박대종씨는 강연장을 쉽사리 뜨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과학자' 채연석 박사를 만난 흥분에 사로잡힌 채, 로켓에 관한 궁금증을 모조리 풀어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박씨는 조선대 로켓연구반 회장. 채 박사로부터 로켓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듣기 위해 일부러 광주에서 대전까지 달려왔다.
직접 로켓을 만드는 채 박사는 그의 우상이었다. 사인도 받았다. 초등학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대학생이라고는 해도, 책이나 인터넷 등에서 얻는 정보만으로는 로켓과 우주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하기에는 부족하죠." 박씨는 연구현장에 있는 선배들의 목소리를 듣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김도형(24ㆍ한국항공대 컴퓨터공학과 3)
컴퓨터와 하얗게 밤을 새고, 활주로에서 여가를 보낸다는 김도형 군. 서울에서 열린 '사이언스 어드벤처 21'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자신의 전공은 아니어도 무관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수업만 따라가다 보면 기초과학의 상식조차 모르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사이언스 어드벤처 21'은 그를 과학적으로 자극시킨다. 황우석 교수의 강연을 들은 후 게놈분석 프로그램에 도전하려고 메일도 보냈고 이영욱 교수의 강연을 듣고는 한국일보 홈페이지에 "너무 좋았다"고 글을 올리기도 했다.
한편 어린 학생들이 질문하는 걸 보면 그 기발함이 내심 부럽다. 아마추어 천문 동아리에 속해있고, 정신분석학을 공부하며, 야학 교사를 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추구하는 컴퓨터공학도의 미래가 자못 궁금하다.
○백재정(44ㆍ외국어학원 운영)
21일 대전에서 열린 강연회에 참가한 백재정(44)씨에게 우주는 이루지 못한, 그러나 버릴 수 없는 '꿈'이다.
소년 시절 비행사가 되는 게 소원이었던 그는 지금 외국어학원 대표가 돼 있다. 그러나 그는 우주를 간접체험하며 산다. 우주, 천문, 물리 등을 다루는 기사는 모두 스크랩하고 책도 많이 읽는다. 강연자인 채연석 박사에게 던진 질문도 "이온 로켓, 광자 로켓 등 더 빨리, 더 멀리 갈 수 있는 로켓연료가 연구되고 있다는데 과연 미래에 어떤 로켓을 타고 우주여행이 가능하게 될까?"라는 것이었다.
"과학이요? 사실 사는 데 직접 관련은 없죠"라고 너털웃음을 웃던 백씨는 "그런데 UFO에 관한 강연은 안 하나요?"하며 진지해졌다. 백씨 안의 '소년'은 과학 강연을 통해 다시 한번 우주여행의 꿈을 꾸었다.
○전유승(14ㆍ인천 구산중 2)
"제 꿈인 우주론 과학자의 미래를 볼 수 있어 너무 행복했어요."
2회부터 꼬박꼬박 '사이언스 어드벤처 21' 강연장을 찾은 전유승 군. '미 항공우주국(NASA) 과학자'가 꿈이다. 원자력병원에서 방사성동위원소를 연구하는 아버지가 강연 참가를 권유했다.
과학을 좋아하고 서로 정보를 나누던 친구 김범연(14ㆍ인천 구산중2)군도 함께 자주 참가한다.
"너무 어려운 내용을 이해 못 할 때는 속상하지만, 우주의 탄생과 별의 소멸에 대한 이야기는 눈과 귀를 뗄 수 없었어요."
전군은 "학교 수업에서도 시청각 자료와 실험을 통해 과학에 접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군의 어머니 이연희(41)씨 역시 "과학에 흥미를 갖는 학생들을 위해 체험과 실험이 함께 이뤄지는 과학수업이 학교에서도 계속됐으면 한다"고 학교 과학교육에 대한 바람을 밝혔다.
"과학은 생활과 멀리 떨어진 학문이 아니죠." 어른스럽다. "얼마 전 읽은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에서 이해 못한 부분을 강연자에게 묻고 싶어요"라며 다음 강연을 기다리고 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문향란기자
iami@hk.co.kr
■매회 300~400명 청중몰려
사이언스 어드벤처의 여정은 가까운 미래에 몸 속을 누비고 다닐 마이크로 내시경부터 우주의 끝까지 이르렀다.
우주학자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진공에너지가 우주의 진화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원소들이 어떻게 우주에서 생겨난 것인지, 생명복제기술이 난치병 치료에 어떻게 적용될 것인지 미래를 일구는 과학의 탐험이 지난 여섯 달 동안 이어졌다.
이제 절반을 돈 그 탐험의 길에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동참했다. 서울과 대구, 대전 등을 돌아가며 열린 강연에 매회 300~400여 명의 청중이 강연장을 메웠다.
수식(數式)의 장벽을 넘고, 전문용어의 강을 건너는 여정은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매회 탐험을 마칠 때마다 놀란 것은 과학자들이었다.
강연자들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받고 당황했으며 "그 질문이 바로 지금 연구의 한계"라고 털어놓았다.
초롱초롱 눈을 빛내는 학생들은 어려울수록 호기심을 불태웠다. 그들은 강연자의 메일 주소를 챙겼고 얼굴이 익은 '단골 청중'이 생겼다. 강연을 거듭하면서 더 어려운 질문을 '과시'하기도 했다.
강연을 했던 황우석(서울대) 교수는 "여러분처럼 열의에 가득 찬 과학도가 있어 우리 과학의 미래는 밝다"고 말했다.
이영욱(연세대) 교수는 "학부모들이여. 의대, 컴퓨터공학 같이 돈 잘 버는 학문이 아니라고 아이들의 꿈을 무시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어떤 학문분야든지 세계 최고가 될 아이들의 가능성을 가로막는 것일지 모른다"는 뜻이었다.
이름있는 과학자들과 어린 청중은 이 순간 모두 동료, 선후배가 됐다.
'사이언스 어드벤처 21'은 첫 1년의 강연일정 중 앞으로 후반부 6번의 강연을 남겨놓고 있다.
5월 최재천 교수의 개미와 인간의 사회성에 대한 강연부터, 6월 블랙홀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 7월 인공위성과 8월 방사광가속기 등 첨단과학의 총아를 살펴보고, 21세기 핫이슈인 나노테크놀로지와 게놈연구로 달려간다.
매월 셋째주 토요일 서울, 광주, 포항 등을 돌며 열린다. 한국일보 홈페이지(event.hankooki.com/science)를 통해 지난 강연을 동영상으로 볼 수 있고 게시판에서 자유토론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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