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마라톤의 두 영웅을 19일 만났다. 뜻 없이 약속날짜를 잡았는데 19일은 특별한 날이었다.이봉주(30ㆍ삼성전자)선수에 앞서 51년전과 54년전에 보스턴 하늘에 애국가가 울려 퍼진 날이 바로 19일이었다.
한국에서는 이날 4월 혁명이 불타 올랐지만 미국에서는 영국군에 대항한 한방의 총성이 보스턴에서 있었다.
미국은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된 이 날을 기념, '애국자의 날'로 정했고 보스턴마라톤 역시 이날을 기려 1897년부터 열려왔다.
'애국자의 날'이 4월 셋째 월요일로 변경되면서 이봉주는 사흘 먼저 보스턴 시내를 달린 것이다. 이봉주의 보스턴 제패를 기념해 '만남'을 가져달라 했더니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정정한 두 원로는 "우리 생일이니 더 뜻이 깊다"고 반겼다.
-19일이 두 분에게 그렇게 의미가 큰 줄 몰랐습니다.
▦함기용= 당시 감독이던 손기정, 코치 남승룡 선생님을 비롯, 서윤복 최윤칠씨 등 보스턴마라톤의 주역들이 매년 이날 축하잔치로 보스턴마라톤 제패를 기념해왔습니다.
흥겹게 지냈지요. 하지만 나이가 들고 힘이 빠지다 보니 근래에는 모이기가 힘이 듭니다. 더군다나 손기정 선생님은 병석에 누워계시고 남승룡 선생님은 지난 2월 작고하셨지요.
-이봉주 선수가 우승하던 날 두 분의 감회는 어땠습니까.
▦서윤복=50년 동안 한국의 베스트 마라토너들이 10여차례나 도전을 했지만 번번이 실패해 선배로서 안타까움이 많았는데 손기정 선생님처럼 저도 이제 여한이 없습니다.
이봉주 선수가 정말 어려운 일을 해냈습니다 (서씨는 57년 감독으로 임종우(林鍾禹)와 한승철(韓昇哲)을 이끌고 도전했지만 각각 3, 5위에 그쳤다).
▦함기용=내가 우승한 것보다 더 기뻐 목이 메였습니다. 다시 한번 우승한 것 같은 감격을 맛보았으니까요.
최근 한국마라톤이 침체기로 접어들지 않았나 걱정했는데 이봉주 선수의 우승으로 다시 한국마라톤이 상승세를 타게 됐습니다.
-해방공간의 혼란기에 보스턴 마라톤 우승으로 국민에게 희망을 심어 주셨는데 당시의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서윤복=미군정 시절이라 출전하는데도 우여곡절이 많았고 보스턴에 도착하기까지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하버드대를 나온 보스턴출신 미군장교가 보스턴마라톤 주최측에 추천을 해 초청을 받았는데 재정보증 등의 문제로 처음에는 미군정 당국이 비행기에 태우지를 않고 다음에 가라 하더군요.
그런데 미군정 체육담당을 맡고 있던 한 여성장교가 자기 월급을 털고 신원보증을 해준 덕에 겨우 미군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괌 하와이 샌프란시스코 등을 거쳐 일주일만에 파김치가 돼 도착했지요.
▦함기용=나는 다행히 정부수립 이후인데다 서윤복 선배님이 우승을 한 터라 별다른 어려움 없이 출전을 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우승을 하고 난 뒤 더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우승을 한 뒤 미국 각지 동포들로부터 환영을 받고 2주일여 만에 돌아와 지방을 순회하며 환영행사에 참가했는데 뜻밖에 한국전쟁이 터지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깡통 껍데기도 받지 못했습니다(정부로부터 훈장도 받지 못했다는 뜻).
-그 당시 환영 열기는 지금에 비할 바가 못되었겠군요.
▦서윤복=환영대회가 열린 서울운동장(현 동대문운동장)에 인파가 꽉 찼으니까요.
부산에서는 인파가 너무 많아 환영식을 끝낸 뒤 빠져 나올 수가 없었는데 손이라도 잡게 해주면 길을 열어주겠다고 해 그렇게 했습니다.
▦함기용=모두가 어려운 시절이었던만큼 세계제패가 국민에게 큰 꿈과 용기를 주었던 것이지요.
지금은 스포츠 각 분야에서 세계정상에 오른 선수들이 많아 옛날 같은 환영열기는 찾아볼 수 없는 편이지요.
-워낙 난코스라 기록경신이 어려운 곳인데 서 선생님은 당시 세계최고기록까지 세웠잖습니까.
▦서윤복=그 당시 왜 그렇게 잘 뛰었는지 지금도 모르겠어요. 45년에 있었던 해방경축체육대회에서 이승만 박사가 연설을 했는데 "세계 어디서도 코리아를 알지 못한다.
여러분들이 세계에 나가 코리아를 선전해달라"는 말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마라톤을 하는 저로서는 내 갈 길을 열어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뒤부터 술도 끊고 훈련에만 열중했습니다. 1년 동안 몸을 다지고 정신력으로 무장한 게 우승의 원동력이 된 걸로 생각하고 있어요.
-함 선생님은 출전선수 중 가장 어리지 않았습니까.
▦함기용=그때 19세였으니 미국인들도 깜짝 놀랐지요. 더군다나 한국선수들이 1, 2, 3등을 모두 휩쓸어 뉴욕타임스 등 미국신문마다 '코리안 1, 2, 3등'으로 대서특필 했지요.
코리아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됐었지요.
-당시 선수층이나 체력적으로나 세계수준과는 차이가 많았을텐데요.
▦서윤복=마라톤선수라 해야 70여명 정도였고 그 중에 풀코스를 뛸만한 선수는 10여명도 채 안됐으니 보스턴마라톤 우승은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었지요.
손기정 선생님의 베를린올림픽 우승이 큰 힘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선배가 해내는데 우리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겁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정신력을 갖게 된 거지요. 손기정 선생님은 한국마라톤의 선구자였습니다. 더구나 감독으로 47, 50년 보스턴 우승까지 이끌었으니.
-일본 마라톤의 약진이 두드러진 반면 한국은 황영조, 이봉주 선수를 이을 차세대 주자가 나오지 않아 안타깝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함기용=스포츠에도 10년 주기의 사이클이 있다고 봅니다. 한국전쟁이후 우리 마라톤은 오랫동안 침체기에 있었지만 결국 해냈습니다.
근래 침체기에 접어들지 않았나 걱정했는데 이봉주 선수의 우승을 계기로 다시 상승세로 접어들 겁니다.
훈련장소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크로스컨트리 훈련을 많이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본마라톤의 급상승 요인도 여기에 있다 하더군요. 우리가 현역시절에도 산을 많이 탔거든요.
▦서윤복=황영조 선수가 은퇴한 뒤 이봉주 선수가 있다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젊은 선수들 가운데 아직 빛을 보고 있지 못하지만 가능성은 충분한 재목들이 있을 겁니다.
대한육상경기연맹에 마라톤강화위원회를 두고 있는데 경기분석 등 보다 과학적인 방법으로 마라톤 육성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물론 정부나 시ㆍ 도에서도 훈련코스개발 등에 도움을 줘야 합니다.
-젊은 선수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서윤복=2시간25분대를 뛴 우리가 2시간7분대를 뛰는 선수들에게 무슨 당부요.
하지만 자신뿐 아니라 나라를 위해 뛴다 하는 국가관을 철저히 해달라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우리 땐 조국을 위해 뛴다고 생각했으니까. 마라톤은 철저히 자기와의 싸움인데 참고 견딘다는 생각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요.
▦함기용=헝그리정신 없이 마라톤은 없다는 말을 새기길 바랍니다. 근래 마라톤 선수들도 귀족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중장거리를 휩쓸던 중국의 마군단이 졸지에 몰락한 것도 귀족화에 있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이봉주 선수가 자랑스러운 점은 마라톤정신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겁니다.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뿐 아니라 한국마라톤의 발전을 위해서도 다행입니다.
◈ 프로필
■서윤복
1923년생. 경성상업실천학교(현 숭문중고) 당시 마라톤에 입문. 고려대 1학년인 24세때 보스턴마라톤대회에 출전했다.
손기정 감독의 지도를 받은 이 대회에서 2시간25분39초를 기록, 우승과 함께 세계최고기록을 수립했다.
태극기를 달고 마라톤 국제대회에서 우승한 최초의 한국인이다. 대한육상경기연맹 이사, 전무, 부회장을 거쳐 현재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함기용
1930년생. 양정중 6학년인 19세때 송길윤 최윤칠과 함께 보스턴마라톤대회에 출전, 2시간32분39초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당시 감독 역시 손기정이었다. 막내인 함기용이 우승을 차지했고 송길윤, 최윤칠이 2, 3위를 차지해 세계적인 화제가 됐고 국내마라톤 붐을 가속시켰다.
대한육상경기연맹 전무, 부회장을 지냈고 현재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진황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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