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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한국인 이렇게 산다] (12)비장애인 부끄럽게하는 장애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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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한국인 이렇게 산다] (12)비장애인 부끄럽게하는 장애인들

입력
2001.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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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다 바빠"오전 6시 기상, 오전 8시 사무실 출근, 낮 12시까지 결재 및 업무 처리, 오후 거래처 방문과 방송 및 음반녹음, 밤 11시 귀가.

가수에다 음반 기획 제작 및 이벤트 연출까지 맡고있는 박순일(朴淳一·30)씨의 숨가쁜 하루다. 명함에는 '에어뷰 M7 엔터테인먼트 대표'라고 적혀있다.

박씨는 지체장애 2급 장애인이지만 같은 직종의 비장애인들도 따라가지 못할 만큼 부지런하다.

그는 장애를 장점으로 활용하는 슬기와 용기를 가졌다. 8세때 숨진 아버지를 대신해 가계를 책임지기 위해 시작한 음악은 박씨를 이벤트 업계의 기린아로 우뚝 서게 했다.

그는 기획력과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1990년 국내 정상급 가수들이 대거 참가한 '장애인을 위한 사랑으로 가는 길' 음반을 직접 기획하고 총연출도 맡았다. 1994년 한 업체의 후원으로 연 '사랑만들기 30개 도시 전국 투어 콘서트'와 6년째 한달에 한차례 공연을 갖고 있는 '빛소리 앙상블'은 박씨의 빛나는 존재를 거듭 확인시킨다.

목표는 음악을 통한 사회봉사. 이를 위해 지난 2월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의 음반기획 제작 및 이벤트 분야 장애인 1호 창업지원 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에어뷰 M7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용 꼬리라도 돼야겠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어요." 박씨의 삶의 철학이다.

4월 현재 국내 장애인은 총 200만명. 이 중 경제활동을 하는 인구는 20만명에도 미치지 않는 것으로 추산된다. 고무적인 현상은 박씨처럼 장애를 훌쩍 뛰어넘어 비장애인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장애인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 '나는 보험아저씨'

이대섭(48)씨의 공식 직함은 삼성화재 미래로 대리점 대표다. 보험설계사다. 지체 및 청각,언어 등 3중 장애를 겪고있는 이씨는 장애인들에게 불모지나 마찬가지인 보험업계를 개척하고 있다.

이씨가 보험에 손을 댄 동기는 단순하다. 20만명 가량의 청각 장애인들도 보험혜택을 받게 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비장애인 보험설계사들이 청각장애인들에게 보험 지식을 주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99년부터 보험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청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보험정보 설명회를 개최하고 있다. 청각장애인 전용창구를 개설하고 수화통역 시스템도 도입했다.

물론 비장애인 대상의 보험판촉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이씨는 "장애인들도 즐길 수 있는 일을 한가지씩 가져야 한다"며 "주위를 둘러보면 자신에게 맞는 일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공복, 이 정도는 돼야죠'

'이런 게 올바른 공무원 상'이라며 관청 안과 밖에서 남다른 주민 서비스에 몰두하는 장애인의 모습은 신선하다. 부산 중구청 민원봉사과에서 일하는 이태성(43)씨는 특채를 거부하고 일반 공채로 당당히 공무원이 됐다.

이씨는 비장애인 공무원을 머쓱하게 만드는 일을 자주 한다. 신규 주민등록을 위해 찾아온 기억상실증 환자의 가족을 두달여 洙소문 끝에 찾아줬다. 부산시 및 구 직원 전산 경진대회에 참가, 무려 4차례 수상해 '컴퓨터 도사'라는 별명도 얻었?

"장애는 능력으로 보완해야 한다"는게 이씨의 지론이다. 87년부터 15년째 '사랑을 걷는 사람들'이란 단체도 이끌고 있다. 임대아파트를 마련해 매주 일요일 장애인 및 비장애인들에게 직접 컴퓨터 교육도 시킨다. 이씨의 욕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장애인문학동호회에 가입해 등단을 앞둘 정도로 글 실력이 뛰어나다.

▲ '7년째 새벽 고속버스를 타고 출근해요'

김 정(29)씨는 억척 여성이다. 선천성 다운증후군으로 인한 정신지체를 겪으면서도 직장인 서울 둔촌올림픽스포츠센터 기획홍보과에서 맹렬히 일한다. 회원관리 등 자신의 업무가 아닌 것들까지 나서서 챙긴다. 한 동료는 "비장애인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7년째 충북 음성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지만 결근이나 지각이 없다. 동료들도 놀라는 강한 정신력과 성실성으로 98년 12월 정보통신부 선정 신지식인으로 뽑히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장애인들의 '세상밖으로 나오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자신만의 일을 갖고 성취감을 만끽하는 장애인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상균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장애인은 더 이상 주변인이 아니다"며 "사회가 장애인들에게 비장애인과 더불어 살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야 이들의 삶의 질이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각기자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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