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고독' 이란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피붙이 하나 없는 곳에 버려진 외톨이. 새까만 후배가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친구를 보스로 섬기며, 걸핏하면 그에게 얻어맞는 머리 나쁜 건달 강재(최민식).중국여자 파이란(장바이츠)도 같다. 어머니가 죽고 고아로 인천 차이나타운을 찾았지만 이모는 캐나다로 가버려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
그래서 말도 안 통하는 이국 땅에서 강재와 위장결혼을 하고 직업소개소를 통해 세탁소로 팔려간 뒤, 혼자 쓸쓸히 죽어간 여자.
철저하게 버려진 3류 인생들이다. 가난보다 무서운 외로움에 그들은 저항하지도, 할 수도 없다. 때론 한마디 욕으로, 때론 허망한 그리움으로 달래려 하지만 외로움만 더할 뿐이다. 이 물리적인 '혼자' 앞에 '철학적이고 낭만적인 고독'이란 얼마나 사치인가.
'남녀상열지사' 가 멜로라고 우긴다면 '파이란' 은 멜로가 아니다.
강재와 파이란은 부부로서 한 순간도 살지 않았다. 사랑의 감정도 없다. 필요에 의해 서로를 이용했을 뿐이다.
어느날 동해 작은 도시에서 날아온 한 장의 사망통지서. 3류 건달에게 처음 그것은 "별개 다 뒤져(죽어)가지고 오라 가라 하는 것"에 불과했다.
희망없는 건달에게 이국 여자는 위장결혼의 대가로 받은 만원짜리 지폐 몇 장보다 하찮았다. 돌아오면 보스인 친구의 살인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감옥에 가기로 약속하고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 여자의 시신을 수습하러 가는 강재.
그 절망의 길에서, 여자가 남긴 편지와 삶의 흔적들에서, 자신이 여자에게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였으며, 그리움의 대상이었음을 알게 된 남자가 바닷가에서 "꺽꺽" 대며 흘리는 눈물이 가슴을 메이게 한다.
그 눈물은 외로운 자의 자기 연민, 버려진 자가 처음으로 자신이 타인에게 의미있는 존재였다는 확인, 그것마저도 빼앗아버리는 현실에 대한 절망이기에 더욱 처연하다.
홍콩영화 '첨밀밀' 처럼 시작하는 '파이란' 은 로드무비 형식으로, 남자의 현재와 여자의 과거 시간을 절묘하게 배치하면서, 남자의 무관심과 여자의 안타까움을 대비시켜 조금씩 감정을 쌓아간다.
두 사람의 연결고리가 약하지만 그런 인생을 살아본 듯한, 강재란 인물을 정말 가슴에 품은 듯한 최민식으로 인해 '파이란' 은 진실한 이야기가 됐다. 그 진실이란 다름아닌 초라한 인생에 대한 연민이며, 너무나 서럽고 쓸쓸한 죽음에 대한 만가(輓歌)이다. 거기에 무슨 멋과 기교가 필요하랴.
"때가 낀 인생이 좋습니다"
■감독 송해성
데뷔작 '카라' 만 생각하면 송해성(37) 감독은 속이 상한다. 속사정도 모르고 그 영화로 자신을 평가하려는 것이 아닌가.
개념도 모른 채 타의로 메가폰을 잡았고, 또 배우들은 얼마나 속을 썩이는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많았다"고 했다. 오죽하면 친구들이 "이거 너 영화 아니지?"라고 물었을까.
'파이란' 은 '카라' 후반 작업을 위해 일본에 갔을 때 통역으로부터 우연히 듣고 읽은 아사다 지로의 소설 '러브 레터' 가 원작이다.
첫 작품을 위해 뒷골목 쓰레기 같은 인간이 주인공인 시니리오를 쓰고 있던 그로서는 소설의 주인공이 너무나 맘에 들었다.
"그래서 포르노 비디오를 파는 초라한 남자가 우연히 아내의 사망통지서를 받은 상황을 중심으로 우리식으로 이야기를 꾸몄다."
스스로 세련되고 고상한 것보다 때가 더덕더덕 낀 인생을 좋아하는 송 감독은 영화를 통해 버려진 사람들, 특히 남자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파이란'은 그 출발이다. "낮선 곳에 던져놓고 그들이 어떻게 충돌하고 아파하는지 다큐멘터리처럼 찍으려 했다."
초라한 건달 강재는 낯선 여자 주검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준 사람이기에(상)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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