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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개를 사랑할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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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개를 사랑할 자격

입력
2001.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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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손주를 본 사람, 골프를 친지 얼마 안 되는 사람, 처음 개를 키우는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손주 자랑, 개 자랑, 골프 치는 자랑을 한없이 늘어놓기 때문에 화제를 그 쪽으로 옮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그 중에서 개를 키우는 사람인데, 얼마나 심하게 개 자랑을 했던지 내 친구들은 나를 만나면 "해피와 안젤로 잘 있어?"라고 개들의 안부를 묻곤 한다.

해피와 안젤로는 10살 9살 짜리 시추 수컷으로 지난 십 여년 동안 정이 흠뻑 든 우리집의 중요한 구성원이다.

주말에 개들을 데리고 공원에 가면 많은 다른 개들과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물론 개를 싫어하거나 무서워하는 사람들도 만나게 된다.

개를 데리고 나온 사람들은 마주치면 미소를 지을 만큼 서로 호감을 느끼는 것이 보통이다.

개가 몇 살입니까, 참 예쁘네요, 좀 뚱뚱하니 덜 먹이는 게 좋겠군요 등등의 말을 주고 받기도 한다.

"얘는 늘 방실방실 웃어서 이름이 방실이 예요" 라고 자신의 포메라니언을 자랑하는 '개 아빠'를 만난 적도 있다.

반대로 기분이 상하거나 언쟁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 가장 흔한 것은 개 똥을 치우지 않고 가는 경우다.

개를 데리고 나갈 때는 꽃삽 휴지 비닐봉지 등을 반드시 들고 나가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런 것 들을 손에 든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

"우리 개는 절대로 집에서 오줌 똥을 안 누기 때문에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아침 산보를 시켜야 해요"라고 말하는 사람의 손이 빈 손 일 때는 개 키우는 나도 화가 난다. 그 개가 아침마다 밖에서 누는 똥은 누구보고 치우라는 건가.

아파트에서 개를 키우는 문제를 다룬 TV토론을 본적이 있는데, "이 세상은 사람만 사는 곳이 아니라 개도 고양이도 같이 사는 곳이란 말입니다"라고 소리높이는 사람이 있었다.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일방적으로 소리칠 일은 아니다. 개를 싫어하는 이웃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개 짖는 소리, 냄새 등을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고, 작은 개지만 두려워 할 수도 있다.

애완동물은 자식처럼 반드시 키워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애완동물을 키우라는 사회적 압력도 없고 의무도 없다.

굳이 따진다면 공동주택에선 안 키우는 게 좋겠다는 압력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완동물을 키우기로 했다면 자신의 선택에 한층 더 책임을 져야 한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애완동물을 키울 수 있는 '권리'만을 주장하고 '의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공원에는 사람뿐 아니라 개도 있고 새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원들은 개를 데리고 오지 말라는 경고장을 붙이거나 개의 입장을 불허하고 있다.

내가 용산 가족공원에 가지 못하는 이유는 개를 데리고 갈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 말라'는 것처럼 쉬운 것은 없다.

공원들은 이제 개의 입장료를 받거나, 개를 어떻게 다뤄야 한다는 규칙을 만들어 벌금을 매기는 식으로 개를 받아들일 연구를 해야 한다.

개를 데리고 오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애완동물은 늘어나는데 '개가 없는 공원'을 고집할 수는 없다.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개를 사랑할 자격'이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웃이 개똥을 밟든 말든 무신경한 사람들까지 개를 키울 필요는 없다.

자녀가 버린 쓰레기를 줍지 않고 가는 사람보다 개똥을 치우지 않고 가는 사람에게 더 화가 나는 것은 저런 사람이 왜 개까지 키워서 남에게 폐를 끼칠까 라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개를 사랑할 자격' 이란 말은 많은 '.할 자격'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비판할 자격'도 그 중의 하나다.

공원에 널려있는 개똥을 보면서, 그래도 동물을 사랑한다는 사람들의 의식이 그 정도인 것을 보면서, 세상이 어지럽다고 비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라는 씁쓸한 생각을 해 본다.

발행인 msch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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