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호는 잊혀지지 않았다. 가수 배호(본명 배만금ㆍ1942~1971)의 팬 클럽은 요즘도 한 달에 한 번 서울 용산구 삼각지 주변에서 모임을 갖는다.유족의 홈페이지(www.baeho.com )를 통해 사연을 올리기도 한다. 대부분 "배호 노래가 좋아" 모인 사람들로 회원은 대략 200명.
요즘 그들은 우울하다. 배호가 살아있다면 24일 생일상을 받는다. 우리 나이로 60세다. 11월 7일은 그가 세상을 뜬 지 30년이 되는 날이다. 그러나 용산의 노래비 건립 계획도 지지부진하고, 중단된 가요제도 부활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배호는 '돌아가는 삼각지' '누가 울어'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등 굵직한 히트곡을 남겼다. 히트곡 수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특유의 저음과 절절한 가창력으로 아직 그의 목소리를 생생히 기억하는 팬들이 많다.
'삼각지 로타리에/ 궂은 비는 오는데/ 잃어버린 그 사람을/ 아쉬워 하며/ 비에 젖어 한숨짓는 / 외로운 사나이가/ 서글피 찾아왔다/ 울고가는 삼각지' (작사ㆍ작곡 배상태).
신장병을 앓던 배호가 24세인 1966년 취입한 '돌아가는 삼각지'는 발표 직후 폭발적 히트를 기록했고, 이후로도 오랫동안 남성들의 애창곡이었다.
독립투사 배국민(1950년 별세)씨의 아들이었던 배호는 많은 독립운동가 집안이 그랬듯이, 경제적으로 궁핍한 시대를 보냈다.
배호는 생전에 '서라벌예대'를 나온 것으로 '선전' 됐으나, 생활고로 부산 삼성중학교를 다니다 중퇴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배호의 사후가 유달리 초라한 것은 우리 가요계의 구조적 문제와도 맥이 닿아 있다. 아직도 배호의 음반을 찾는 사람은 적지 않지만 그가 타계한 후 유통된 음반의 80% 이상이 '가짜 음반'이다.
배호기념사업회 초대회장을 지낸 사회운동가 정용호씨는 "음반 판매상을 조사해 보니 시중에 나도는 음반의 대부분이 가짜 음반이었다.
심지어 타계 10년후인 80년대에도 '가짜 배호'가 노래를 취입해 '새 음반'이라며 발표한 적도 있다"며 탄식했다.
때문에 유족에게 지급된 로열티도 매우 적었고, 최근엔 이 조차 끊겼다. 1993년 첫 회를 치른 '배호가요제'는 집행부의 이견 등으로 98년을 끝으로 중단됐다.
팬들의 걱정은 또 있다. 오빠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정신적 충격에 휩싸인 여동생(48)이 아직도 입원해 있는데, 누구 하나 돌봐줄 이도 경제적 여유도 없기 때문이다.
일단 용산구청은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비 건립을 위해 1,000만원의 예산을 책정하고 연내 일을 마무리 할 계획은 갖고 있지만, 아직 설계 초안조차 나오지 않았다. 구청측은 "일단 삼각지 녹지대, 일명 '교통섬' 부근에 비를 건립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살아서 절정의 인기를 누린 배호. 그러나 영광의 시간은 짧았고, 음악적 성과에 대한 아무 평가도 없이 경기 장흥군 신세계 공원묘원에 쓸쓸히 누워 있다. 우리 가요계의 씁쓸한 현실이기도 하다.
●돌아가는 삼각지
삼각지 로타리에
궂은비는 오는데
잃어버린 그 사람을
아쉬워 하며
비에 젖어 한숨짖는
외로운 사나이가
서글피 찾아왔다
울고가는 삼각지
저음의 가수 배호
박은주기자
jup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