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골프세상] (98)한쪽으로 쏠리면 뒤집힌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골프세상] (98)한쪽으로 쏠리면 뒤집힌다

입력
2001.04.19 00:00
0 0

체조선수의 생명은 균형이다. 아무리 고난도의 기술을 발휘해도 착지할 때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거나 넘어지면 감점을 당해 낮은 점수를 받는다.평정(平靜)은 균형이다. 균형이 잡히면 쓰러지지 않는다. 마음도 균형이 잡히면 흔들리지 않는다. 마음이 한쪽으로 쏠리면 뒤집힌다.

불쾌하거나 억울한 상황, 불 같은 분노에 빠졌을 때 뱉어내는 '속이 뒤집힌다'는 말은 바로 마음이 한쪽으로 쏠려 뒤집어짐을 나타낸다.

노여움이든 기쁨이든, 슬픔이든 즐거움이든 어떠한 감정도 한쪽으로 쏠리면 전체적인 마음의 평정을 잃어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다.

마치 잔잔한 호수면에 투영된 주위의 산이나 구름의 모습이 한줄기 바람을 만나 수면이 출렁이면서 산산이 부서지듯이. 우리 마음이 무엇인가 한쪽에 쏠려 있을 때 거기에 투영되는 사물은 일그러지거나 부서질 수밖에 없다.

공자(孔子)의 중용(中庸)사상이 오늘날에도 호소력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은 바로 균형과 평정의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골프에서 마음의 평정은 절대적이다. 잘 나가든, 못 나가든 어느 한쪽에 마음이 쏠리면 그날의 골프는 망친다고 보면 틀림없다. 분노와 절망으로 쏠리면 더욱 심한 분노와 절망에 빠져 재기의 희망을 잃어버리고, 지나치게 기쁨과 즐거움에 깊이 빠져 있어도 신중함을 잃고 자만을 불러 미스샷을 자초한다.

그래서 아무리 형편없는 샷을 날려도 절망에 빠지지 말고, 두 번 다시 흉내내기 어려운 기막힌 샷을 날려도 좋아서 날뛰어서는 안 된다.

모두 마음의 호수에 격랑을 일으켜 평정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골프장에서는 차라리 포커페이스가 되거나 목석이 되는 편이 낫다.

이런 의미에서 골프는 마음의 평정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는가를 겨루는 게임이다. 18홀이 끝날 때까지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고 항해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훌륭한 골퍼라고 부를 만하다.

미 LPGA투어 오피스 디포에서 4타차 선두로 마지막 라운드를 시작한 팻 허스트가 아니카 소렌스탐과 김미현의 추격에 보기를 연발하며 자멸하고 만 것은 기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허스트는 마지막 라운드에서만 7개의 보기를 기록했는데 프로골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추락이 아닐 수 없다.

마음의 평정을 잃은 탓이다. 주말골퍼들이 한번 무너지면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도 마음의 평정을 잃기 때문이다.

미국의 골프평론가 찰스 프라이스는 "아무리 쉬운 골프장이라도 코스 어딘가에 어려운 홀을 감추어두고 있다. 냉정한 플레이어와 혼란에 잘 빠지는 플레이어를 구별하기 위해서"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18홀 장갑을 벗을 때가지 흔들리지 말고 평정을 유지해야 함을 가르치는 말이다.

/편집국 부국장=방민준 mjb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