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우리에 사는 멀끔한 중년 부부, 방2개짜리 집에 함께 사는 다섯 가구, 가재도구 하나 없는 살림집….’ 경기 성남시 판교 일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령가족’들이다.판교신도시 개발 여부에 대한 결정이 표류하면서 판교동과 운중동 일대에서 주택이전 보상과 임대아파트 분양권 등을 노린 위장 전입자들의 ‘가구(家口) 만들기’수법이 백출하고 있다.
■ 창고, 돼지우리가 '살림집'
18일 오후 판교동사무소. 신사복 차림의 30대 남자가 찾아와 자신을 벤처사업가라고 소개한 뒤 “사무실과 주거용 공간으로 사용하겠다”며 전입을 신청했다. 그러나 전입신고를 한 주택은 이미 2가구가 살고 있어 더 이상의 주거공간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 반려됐다.
이처럼 거주가 불가능한 공간에 전입신고를 하는 수법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못 쓰는 창고나 심지어 돼지 축사에서 사는 것으로 신고하는 위장전입자들도 속출하고 있다.
판교동 사무소 관계자는 “현장에 확인하러 가면 서울의 중년신사가 몇 년째 폐허가 된 창고에 사는 것으로 돼 있어 놀란 적도 있다”고 전했다.
■ 가재도구 없는 유령의 집
사람은 없고 짐만 이사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들은 빈방에 이불보따리나 장롱 하나만 들여놓은 뒤 전입신고 후 사라진다. 한 공익근무요원은 “지난 1월 폭설이 내린 날 밤에 인근 신도시에서 네 식구가 이사왔다고 해서 다음날 가보니 주인은 없고 헌 장롱 한 짝과 옷 세벌만 덩그렇게 방 한켠에 놓여 있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판교동 주민 최모(57)씨는 “빈방을 마치 누군가 사는 것처럼 중고 가구나 못쓰는 가구를 들여놓은 집도 흔히 볼 수 있다”며 ‘그러나 이 집에는 생활에 필요한 가재도구 하나 없다”고 귀띔했다.
■ 수법 갈수록 지능화
판교동과 운중동 사무소는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3월까지 특별단속을 벌여 307가구 630명의 위장전입사례를 적발하고 주민등록을 직권말소 조치했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이다.
최근 들어 단속이 강화되면서 위장전입 수법은 갈수록 지능화해 단속을 무력화하고 있다. 한 단속 공무원은 “냉장고와 세탁기 등 살림살이를 완벽하게 들여놓고 현지 관리인까지 두는 경우도 있어 위장전입 여부를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판교동사무소측은 위장전입 가능성이 있는 50여가구를 특별관리대상으로 지정, 밤낮을 안 가리고 들이닥쳐 실제 거주 여부를 확인하고 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판교동 진광용 동장은 “위장전입을 뿌리뽑을 때까지 전직원을 투입해 지속적인 단속을 펼칠 계획”이라며 “요즘도 하루에 3~4건의 전입신고가 이뤄지지만 대부분 반려된다”고 말했다.
강 훈기자
hoony@hk.co.kr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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