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외환보유고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한국은행이 급격한 환율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해서 달러를 내다 파는 것도 감소요인 중 하나다. 그러나 외환시장 불안요인 중 보다 중요한 것은 변칙적 외환도피라고 본다. 국세청이 최근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에 변칙적 외환거래를 통해 해외로 빠져나간 외화도피액은 약 92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것은 외환보유고의 약10%이며 국내 개인금융자산의 약1%을 조금 넘는 수준으로 아직 우려할 정도는 아니다. 그렇더라도 올해부터는 외환거래가 전면 자유화하므로 자본이동은 더욱 신속하고 용이하게 될 것이다.투기성 단기자금이나 불법외환거래에 따른 자본이동은 국내외환ㆍ자본시장을 교란하고 외환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특히 최근에 일본엔화 가치하락, 미국증시 침체 등으로 원화환율도 급격히 동반상승하고 있다. 한국은행, 국세청 등이 외환시장의 안정을 위해 불법외환거래 및 투기적 단기 자본 유출입을 억제하는 것은 마땅하고 옳은 일이다. 국세청은 이를 위해 종합적 국제거래 세원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서 국부유출을 막기로 했다. 한국은행도 제2단계 외환자유화 시행이후 경상ㆍ자본거래 동향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했다.
그러나 투기성 자본이동 및 불법외환거래를 억제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며 실효성도 크지 않을 것 같다. 또 당국이 외환시장에 지나치게 규제 간섭하는 것은 외환자유화에 어긋날 뿐 아니라 국제자본의 효율적 배분을 제약할 수도 있다. 따라서 자본이동의 직접규제는 신중히 할 필요가 있다. 그와 함께 거시경제정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환율을 안정시키는 것이 단기자본의 투기적 이동을 억제하는 데 효과적이다. 또 환율을 인위적으로 안정시키기 보다 시장의 수급에 맡기는 것이 환투기의 공격을 피하는데 도움이 된다.
최근 해외이민이 크게 늘고 있다. 그들이 이민을 떠나는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한국에서 자녀교육에 절망한 부모들, 국내정치에 실망한 국민, 일관성 없는 경제정책이나 규제위주의 관료주의에 실망한 기업인, 부패한 사회, 파탄이 난 건강보험 등을 걱정하는 사람들이면 오히려 이민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부러움과 연민을 느낀다. 사실상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세계에서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상품, 서비스, 노동인력 중에서 가장 이동성이 낮은 것이 노동인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자본은 훨씬 대규모로 이동한다고 봐야 한다.
해외자본도피를 억제하는 길은 바로 국내의 투자환경을 개선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에 외국인 투자가 감소되고 있는 것도 불안하다.
우리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외국인 직접투자 및 증권투자를 위한 외자도 많이 유입되었다.
그러나 근래에 정부의 개혁의지가 시들고 국민의 정부가 내세우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도 순조롭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구조조정과정에서 시장기능은 위축되고 정부개입이 확대되었다. 많은 금융기관이 정부소유로 넘어갔다.
민주주의도 법과 원칙에 의한 통치가 제대로 되는 것 같지 않다. 노사갈등이 심화되는 것도 기업경영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 특히 대기업, 공기업, 금융기관 등의 구조조정이 부진한 원인 중의 하나도 노사갈등이 심화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투명하지 못한 기업경영이나 소유지배구조도 외국인 투자를 억제하는 요인이다. '한국을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겠다는 약속이 공약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마찬가지로 국부유출을 막기 위해서는 사람이건 자본이건 국내에 남아있는 것이 가장 유리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재웅ㆍ성균관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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