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주변에서 이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사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지만 요즘에는 그래도 물건을 싸고 나르고 정리하는 일까지 한번에 해주는 이삿짐 업체가 있어 훨씬 수월해졌다. 그러나 나도 몇 년 전 경험한 일이지만 이삿짐 센터 직원들이 살림살이를 너무 함부로 다뤄 세간이 깨지는 일이 있어 짜증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일을 해준 이 후에도 별별 이유를 들면서 추가비용을 요구하기도 한다.최근 한 친구도 이사를 하다 이삿짐 센터 직원들과 다툰 얘기를 하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대충대충 짐을 싸고 날라 아까운 세간들이 많이 망가졌는데 사과도 하지 않고 술값이 필요하다며 웃돈을 요구하더라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몇 해 전 일본에서의 기억이 되살아 나면서 언제 우리 사회도 그와 같은 일들이 일상화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동경에서 3년간의 주재원생활을 마친 후 많지 않은 짐을 안전하게 옮기기 위해 현지의 이삿짐 센터에 부탁한 적이 있다. 이삿짐센터 직원 두 명이 오전부터 집에 와서 일하는 모습이 그 때의 내 상식으로는 무척 신기하게 보였다. 그들은 남의 일이 아니라 꼭 자기 세간을 다루듯 조금도 서두르는 기색이 없이 정성껏 짐을 쌌다.
나는 그들의 일하는 모습이 너무나 고마워 답례로 점심이나 한 끼 대접하고 싶었다. 그래서 평소에 봐두었던 주변에서 가장 깨끗하고 음식 맛이 좋은 식당에 전화를 해서 예약까지 해두었다.
그러나 정작 점심시간이 되자 두 사람은 어느새 슬그머니 사라져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30여분 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그들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며 항의 겸 섭섭함을 표시하자 그들의 대답은 간단했다. 자기들 회사에서 책정된 하루 임금 속에는 점심값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즉, 내가 지불한 요금에서 점심값이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이미 자신들은 내 돈으로 점심을 사먹었다는 얘기였다. 조금 정이 없다는 생각도 잠깐 했지만 그들의 철저하고 성실한 자세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오후 작업은 아파트 앞마당 한 귀퉁이에서 있었는 데 그들은 일을 끝내기가 무섭게 물로 마당 구석구석을 먼지하나 없이 깨끗이 청소하고는 조용히 돌아가는 것이었다. 자기 일에 충실하고 일을 맡긴 고객에게는 조금의 부담도 주지 않으려는, 직업인으로서 어쩌면 당연한 그들의 태도에서 나는 무언가 마음의 빚을 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오래도록 지울 수가 없었다.
/이호윤 서울 성동구 응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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