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도(共同)통신에서 펴내는 세계연감에는 나라마다 문맹률이 나온 적이 있다. 우리나라는 0%, 문맹자가 전혀 없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그렇지는 않다. 올해로 20년이 된 서울 종로5가의 야학, 연동청소년학교에는 문맹자들을 위한 한글반이 있는데 매년 40명이 입학한다. 배우겠다는 사람은 많지만 가르칠 여력이 없어 그만큼만 받는다. 주부공민학교나 태청야학, 또 검정고시학원의 한글반도 사정은 엇비슷하다. 늦깎이 학생들은 대부분 50, 60대 여성들이다. 어렵던 시절, 딸이라서 공부할 기회를 놓쳤던 이들이 자식들을 키워놓은 뒤 공부하러 나선 것이다.
뒤늦게 공부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교육기관이 드물다 보니 찾아가는데 쏟는 시간만도 꽤 된다. 연동청소년학교 주부학생 중에는 경기 남양주에서 오는 사람도 있다. 만일 가까이 있는 아무 초등학교에서나 배울 수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쉽게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늦깎이 학생들은 초등학교를 다닐 수 없다. 지난해까지는 5, 6, 7세에게만 입학자격을 주었고 올해부터 초중등교육법이 바뀌어 가정학습을 하다가 뒤늦게 입학할 길은 열렸지만 이것도 초등학생 학령으로 간주되는 7~13세 어린이에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이로 묶여있는 것은 초등학교 입학만이 아니다. 진학도 그렇다. 1학년을 마치면 2학년으로 올라가야 하고, 2학년을 마치면 3학년이 되어야 한다. 공부를 전혀 못 따라가도 6년이 지나면 졸업을 해야 한다. 중학교나 고등학교도 마찬가지이다. 한 학년을 쉬려면 질병에 의한 장기휴학 밖에 방법이 없는데 거기에는 의사진단서가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쉬엄쉬엄 학교를 다니는 것도, 한 때의 방황으로 한 두 해 쉬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공부를 따라가지 못해도 학년은 꼬박꼬박 올라가니 중학교를 졸업해도 초등학교 과정조차 모르는 아이들이 탄생한다.
왜 유급이 불가능한가, 왜 정해진 나이가 아니면 초ㆍ중등학교를 다닐 수 없는가에 대해 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는 "또래끼리 배우는 것이 인성면에서 보탬이 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나이든 이들과 젊은 사람이, 남녀가, 다양한 구성원이 섞여 있는 사회가 인성에 좋다고 누구보다 교육자들이 역설하지 않던가. 또래끼리 배우게 한 지금의 교육제도는 인성보다는 또래끼리 비슷한 업무에 종사해야 하는 산업사회의 인력수급정책상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나이와 성별에 따라 상하관계가 규정되지 않는 탈산업화 시대이다. 사회의 요구에 따라 남녀공학이 자리잡은 것처럼 이제 교육에서 적정한 연령이란 개념도 파괴될 때가 왔다.
다양한 연령층이 섞이면 또다른 장점이 있다. 교사는 어른이 아니라 교육정보 공급자이고 제자는 어린이가 아니라 교육정보 소비자라는 당연한 상식이 자리잡게 될 것이다. 할머니 초등학생이 한 반에서 배우기 시작하면 학생들은 좀더 의젓해지고 교사들은 좀더 학생들에게 예의를 갖추게 될 것이다.
서화숙(여론독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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