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사건 재판결과를 둘러싼 법원과 검찰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두 기관간 갈등은 단순히 피고인의 형량을 다투던 기존의 양태를 벗어나 검찰수사의 신뢰성 여부 등 형사공판의 대전제인 '증거재판주의 원칙'에 대한 양 조직간 자존심 대결의 성격마저 내포하고 있어 수습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대표적 사례인 총풍사건과 임창렬(林昌烈) 경기지사 금품수수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들은 "검찰에서 작성된 피고인 진술조서에 임의성(任意性)이 없다"며 각각 '국기문란'과 '뇌물수수'사건이라는 1심 재판부의 결론을 뒤집었다.
피고인들이 변호인의 도움이 없는 상태에서, 또는 검찰의 추궁으로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자백한 탓에 이를 담은 진술조서는 재판에서 증거로 채택할 수 없다는 것이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총격요청의 사전모의 여부가 쟁점이었던 총풍사건에서 재판부는 "총풍 3인방의 준비과정이 허술하고 총격요청으로 얻을 실익이 없는데다 이를 일부 시인한 피고인들의 진술에 임의성이 없다"며 사건 실체 자체를 '사전모의 없는 우발성 해프닝'으로 판단했다.
임 지사가 받은 1억원이 뇌물인지 정치자금인지가 쟁점이었던 임 지사 사건에서 재판부는 '로비가 이뤄진 시기에 경기은행 퇴출 위험이 없었고 임 지사도 심리적으로 궁지에 몰린 상태에서 자백했다'는 점을 들어 대가성을 부인했다.
재판부의 이 같은 판단은 '검찰이 유죄를 이끌어내기 위해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결론으로 이어져 수사 검사를 비롯한 검찰 조직의 강력한 반발이 뒤따랐다.
검찰의 반박 논리는 '재판부가 어떻게 수개월동안 치열한 조사 끝에 얻은 검찰 증거보다 피고인들의 법정진술을 더 믿을 수 있는가'로 집약된다.
총풍사건의 공소유지를 담당한 이영만 검사는 16일 "재판부가 최대 쟁점인 무력시위 모의 여부에 대해 총풍 3인방간의 전화통화 기록, 메모지 등 수많은 검찰 자료를 배척한 채 오정은, 장석중씨의 일방적인 부인(否認) 진술에 의존했다"고 주장했다.
이 검사는 구체적인 증거로 수사기관인 국정원과 검찰은 물론 법정에서도 일관되게 모의사실을 시인한 한성기씨의 자백, 오정은씨와의 국제전화 통화내역서, 당시 이회창 후보측에 전달한 '특단 카드 협상 정보보고서'등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지난 4일에는 임창렬 사건을 수사한 권오성 검사가 "충분한 기초조사와 수십명의 진술을 청취한 끝에 임지사를 기소했다"며 "법원이 검찰의 증거를 정독하지 않고 피고인의 법정 진술만 맹신한다면 검찰수사는 당연히 엉터리가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검찰 일각에서는 "검찰과 피고인간 치열한 공방이 벌어진 사건에서 법관이 직권으로 증인을 채택하는 등 실체적 진실을 가리기 위한 노력은 소홀히 한 채 피고인의 부인 진술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불만마저 제기되고 있다.
손석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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