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자전을 잠시 멈춘 적 있죠?" 한국천문연구원에는 가끔 전화나 메일로 이런 질문이 온다. 태양이 지평선에서 약간 내려갔다는 것이다. 정말 지구가 자전을 멈추거나 방향을 거꾸로 바꾼다면 소행성 충돌 못지 않은 대재앙이다.그러나 사실 지구의 자전속도는 불규칙하다. 자전축의 위치도 수 ㎙씩 바뀐다. 자전속도가 달라지면 하루 길이도 달라진다.
과학자들은 지구의 자전속도를 정확히 측정하고 예측하려고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자전이 불규칙한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큰 팽이
독일에서는 지구의 자전속도를 정밀히 측정하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큰 유리 팽이(gyroscope)가 지어지고 있다.
렌즈회사로 알려진 칼 자이스사가 바이에른 삼림지역에 올 여름까지 완공할 예정이다. 지름 4.25㎙, 25㎝두께의 세라믹 유리로 만들어진, 90억원짜리 초정밀 회전체다.
지하실험실 안 바닥에는 10톤이나 나가는 화강암 판을 깔아서 지반을 안정시키고 온도와 기압의 변화를 최소화하기 위해 강철 통으로 감쌌다.
팽이라고는 하지만 동그란 팽이 모양과는 거리가 멀다. 네 귀퉁이에 반사가 잘 되는 유리가 세워진 '사각형 회전체'다. 유리 사이에서 양쪽 방향으로 레이저를 쏘면 빛은 계속 유리에 반사돼 제자리로 돌아온다.
지구가 도는 속도가 달라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인하대 물리학과 차동우 교수는 "기준계(지구)의 회전속도가 달라지면 한쪽 방향의 레이저는 파장이 짧아지고, 반대 방향의 레이저는 파장이 길어지는 차이를 낳는다(도플러효과ㆍ기차가 달려오는 방향 앞에서 기적소리가 높아지는 것과 같은 효과).
주파수 차이가 난 두 빛이 만나면 색이 바뀌거나 무늬가 나타나는, 간섭(干涉)효과가 나타난다. 그 차이를 수식에 의해 분석하면 지구자전 속도를 정밀하게 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구는 불규칙하게 돈다
지구의 자전이 균일하지 않다는 의심은 17세기부터 있었다. 헬리 혜성을 발견한 천문학자 에드번드 헬리는 1695년 달이 있어야 할 지점보다 앞서 있는 것을 관측했다. 달의 궤도 계산은 정확했다. 결론적으로 지구의 자전이 느려졌다는 뜻이었다.
현대에 와서 자전속도를 정밀하게 측정하게 됨에 따라 하루의 길이는 0.001~0.003초씩 차이가 난다. 또 대체로 겨울에 여름보다 늦게 돈다.
북반구의 겨울에는 전반적으로 얼음이 많아지는데 마치 팔을 벌리고 돌 때 느리게 도는 것처럼 자전속도가 느려진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론 1만년마다 하루길이가 1.5~2초씩 늘어난다.
지구의 자전속도가 바뀌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정확히는 아직 모른다. 장기적으로 느려지는 이유는 밀물과 썰물의 마찰력 때문이다.
바닷물과 지구 암석층의 마찰에 의해 회전 에너지를 조금씩 잃는 것이다. 또 대규모 해수의 움직임, 대기의 변화, 지구 내부물질의 움직임 등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전축도 바뀐다. 지구의 자전축은 23.5도 기운 채 2만 6,000년 동안 한 바퀴를 도는 세차운동을 한다. 뿐만 아니라 자전축의 좌표조차 바뀐다.
마치 팽이가 돌면서 끄덕끄덕 움직이는 것처럼 지구도 자전하면서 지구를 흔든다(장동ㆍ章動). 때문에 지구의 극은 수㎙씩 좌표가 바뀐다.
이 '극 운동'은 약1.2년의 주기를 가지는데 미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 과학자들은 지난해 극 운동의 원인이 해저의 압력변화 때문이라고 발표했다.
■지구 자전속도 측정방법
지구의 자전속도를 알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 레이저 회전체 외에 이미 다양한 기술이 활용돼 왔다.
달이나 위성에 레이저를 쏘거나, 지구위치 측정 시스템(GPS), 전파망원경을 이용한 초장거리 전파간섭계(VLBI) 등을 이용하면 자전속도를 알 수 있다. 지구 밖 천체, 위성을 기준으로 관찰자의 위치변화를 추적하는 것이다.
가장 정밀한 전파간섭계를 예로 들어보자. VLBI란 전파망원경 여러 대를 수 백㎞에 걸쳐 늘어놓아 하나의 거대한 전파망원경 기능을 하는 것이다.
VLBI는 1,000분의 2초(1초=1도의 360분의 1)의 움직임까지 분별할 수 있다. 즉 광학망원경보다 1,000배나 정밀하며 우주상공에 떠 있는 허블망원경보다도 10배나 정확한, 세계 최고의 정밀도를 자랑한다.
먼 천체로부터 오는 전파를 VLBI로 계속 관측하면 거꾸로 관측지점의 변화를 구할 수 있는데 이 변화로부터 지구 자전속도의 변화를 정밀하게 구할 수 있는 셈이다. GPS는 위성으로부터 오는 전파를 받아 자전속도를 구하는 것으로 정밀도는 다소 떨어진다.
달까지 레이저를 쏘는 방법도 있다. 멀리 가도 퍼지지 않는 레이저는 달에서 반사돼 지구로 돌아온다. 이를 측정하면 지구에서 달까지 정확한 거리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구가 기울어진 경사(황도 경사), 장기적으로 지구축의 움직임을 잴 수 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