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가 탄탄한 과학이 뒷받침된 기술력을 갖추었더라면 미국 경제가 아무리 경착륙을 해도, 일본 경제가 앞으로도 아무리 오랫동안 장기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해도 지금처럼 밑바탕부터 흔들리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김영환(金榮煥) 과학기술부 장관은 '정숭호가 만난 사람'중 두 번 째 장관이다.지난해 7월 서정욱(徐廷旭) 전 과기부 장관을 만난 후 처음 만난 장관이다.
그 동안 쉰 여 명이 넘는 이런 저런 사람을 만나오면서 장관으로는 과기부 장관만 만난 건 먹고 사는 문제가 또 다시 심각한 지경이 된 지금 실정에서 과학 기술 발전이 더욱 중요한 국가적 과제가 되었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 지면을 통해 과학 기술에 대한 과기부 장관의 인식을 과학 기술 발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 김 장관의 경우 그의 다양한 삶에 대해서도 흥미가 있었다.
연세대 치대에 다니던 그는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가 2년간 투옥생활을 했으며 일당 3천원짜리 노동자생활을 거친 후 15년만에 대학을 졸업하고 치과의사가 되었다가 정치에 뛰어들어 재선(경기 안산갑ㆍ민주)에 성공했다. 그는 또 감옥에서 시를 쓰기 시작, 지금까지 시집 세권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원칙적인 질문인데, 과학기술은 왜 중요한가. "우리나라는 자원이 부족하니 사람을 자원으로 하는 과학입국만이 살 길이다. 그래야만 우리 미래를 제대로 찾아갈 수 있다. 임진왜란부터 시작해 동학 갑오농민전쟁을 거쳐 한일합방으로 나라를 잃는 과정은 과학기술의 역조, 산업기술의 역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금치에서 그 수많은 동학농민군이 일본군 1개 중대에 당한 건 결국 조총이라는 당시의 선진과학기술에 농민군의 죽창이 당한 것이다.
기술의 격차가 망국의 길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자동차를 수출하고 위성을 우주로 쏘아올리며 반도체는 세계 최고로 잘 만들고 있고 IT는 일본에 앞서 있다. 이 말은 과학기술은 지나간 역사에서는 교훈이 되고 있으며 미래를 열어가는 지침이라는 것이다. 중요하지 않은가.
-현재 파악하고 있는 과학기술계의 첫 과제는 무엇인가.
"과학기술이 우리 사회로부터 받고 있는 대접을 바꾸려 한다. 누구나 중요하다면서도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게 과학기술이다. 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어제 국회에서 하루 종일 기다렸는데 어떤 의원도 나에게 질문 하나 하지 않았다.
또 민주당 대변인을 할 때는 하루 300명의 기자를 상대했는데 과기부에는 상근하는 기자가 한 명도 없다. 과학기술이 국가적 이슈가 되지 못하고 국민의 관심사가 되지 못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사례다."
-과학기술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겠다는 말인데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국회의원 중 자연계 출신이 21명이다. 그 중 의사 약사를 빼면 12명이다. 과학기술은 엄청나게 빨리 변하는데 우리사회 대표적 지도력인 국회의원의 겨우 9%만이 자연계 출신이라는 건 문제다. 국무위원 가운데 도 자연과학을 공부한 사람은 19%에 지나지 않는다.
말로는 과학기술시대라고 하지만 권력이나 사회적 핵심에서 이렇게 벗어나 있으니 학생들도 어렵고 힘든 과학의 길로 들어서려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점에서 과학자들의 사기를 올리는 게 첫번째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많겠지만 과학자들도 노력해 스스로의 정치적 사회적 지위를 높여야 한다."
-과학자가 스스로의 정치적 사회적 위상을 높여야 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파스퇴르의 말처럼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국경이 있다. 이는 과학자들이 사회적 자아를 가져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과학기술분야에는 예산의 5%가 투입되고 있다.
과거에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액수이다. 내년에는 5조5천억원 정도가 될 것이다. 이처럼 막대한 과학기술예산은 미래를 위해 국민들이 허리 띠를 졸라매고 만들어낸 돈이다.
지금 국민경제가 어려운 건 우리가 우리에게 필요한 원천기술을 확보하지 못하고 정보화사회를 선도하지 못한 결과라고 보면 여기에는 과학자들의 책임도 있다고 본다. 미국이 인공위성 쏘는 걸 우리과학자가 연구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우리 산업이 갖고 있는 문제와 조건, 우리가 갖고 있는 전략적 과학적 요충을 장악하고 점령하기 위한 국적 있는 과학을 해야 할 것이다.
-그 말에 대해 과학자들의 반발이 클 것 같다.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 아닌가.
"아니다. 과기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과학기술정책을 기획하고 전략을 수립하는 걸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아야 한다.
국가적 과학정책의 마스터플랜을 마련하는 게 바로 그것인데 그 내용은 두말 할 것 없이 기초과학과 원천기술로 구성되어야 한다.
기초과학과 원천기술의 부족이 지금 우리 경제가 더 성장하기 어려운 한계에 봉착한 원인 아닌가. 우리는 지금까지의 경제발전으로 기술인력이 충분해 기초과학이 발전하면 응용기술은 금방 발전한다.
앞으로 1년간은 우리 과학계가 나아가야 할 정확한 비전과 목표를 세워 연구기관에 임무를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될 것이라고 본다."
-정치인 출신 장관인데 또 개각이 되면 업무의 연속성이 없어지지 않을 까. 또 대선이 2년도 남지 않았는데 과연 뜻을 펼 수 있을까.
"정치인 출신으로 장관직을 수행하는 데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무난하게 소임을 마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기에 모든 걸 다 거는 것이다. 나는 후자를 선택할 생각이다.
무난하게 소임을 마치면 소위 대과 없이 물러나게 돼 경력관리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장관직이 국민에게 직접 봉사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내 모든 걸 다 걸어볼 생각이다. 다른 것 생각하지 않고 모든 것을 걸고 장관으로서의 역할 다하겠다. 대선이 2년 남은 시점에서 장관을 맡은 건 정권 초기에 맡은 것보다 뜻을 펴기에 불리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
-정말 장관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나이도 젊고 경험도 없는데?
"어제 국회에서 굴욕감을 느꼈다. 누가 5분 발언하면서 치과의사가 과기부 장관이 되다니라는 표현을 했다고 들었다.
이 표현에는 우선 치과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비하가 들어있는데 그렇다면 정치는 꼭 정치외교학과 출신만 해야 하는가. 치과의사는 생리학 해부학은 물론이거니와 재료학 물리학 화학을 깊게는 몰라도 폭 넓게 알아야 하는 직업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전기분야 기술 면허가 6개 있는데 모두가 정보통신의 기본이다. 또 시공능력도 있다. 거기다 국회 과기위에서 5년 간 수련도 했다.
치과의사니까 과기부장관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웃기는 정도가 아니라 치과의사도 비하하고 과학도 비하하는 전형적인 사농공상적 생각이다.
내 삶에 대한 능멸이라고 생각했지만 국회발언에 일일이 대응할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삭혔다.
그는 자신의 다양한 삶 중 시인_문화인으로서의 삶에 대해 애착과 자부심이 가장 강한 듯 했다.
과학기술에 대한 대화를 나누면서도 "황지우가 글을 보내줬는데‥"라거나 "김지하씨에게 전화를 했더니‥"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튀어나왔으며 자신의 시 구절을 외워보이기도 했다. 서울 인사동의 한 화랑에서 인터뷰를 하자고 알려온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됐다.
-그런데, 전업 문인들이 이것 저것 살아온 김 장관을 정말 동류라고 보고 있을까. 그들은 김 장관을 성공한 딜레땅뜨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걸 느낀다. 내 시집이나 책에 대해 서평을 부탁하면 안 써주는 게 당연하다는 듯 튕기는 사람들이 많다.
나를 본류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자기들처럼 학교에서 문학을 정식으로 공부하지 않아서 그런 모양인데 지금도 15년 전에 나온 내 첫 시집을 읽고 우는 사람이 있다. 내 시에 감동구조가 없다면 15년 전의 시가 지금도 감동을 줄 수 있을까.
내 시와 내 글이 정당한 평가를 못 받고 있다. 아주 괘씸한 일이다. 언젠가는 내가 공세를 한 번 대대적으로 펼 생각이다. 너네들도 그런 점에서는 속물이었다는 비판을 한 번은 퍼부어 볼 생각이다."
그는 지금도 일 주일에 한 편씩 수필을 쓰고 있다. 대단한 열정이다.
-장관 하랴, 글 쓰랴. 에너지가 분산되는 것 아닌가. 어느 하나를 집중 공략해야 하지 않나. 장관직에 모든 걸 걸겠다고 해놓고서는?
"내가 다른 정치인 보다 나은 건 하나 뿐이다. 창조적 상상력만은 누구와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자신한다. 40대가 되기 전까지 모든 것이 안 풀렸던 내가 지금 이나마 반짝거릴 수 있는 건 바로 그것 때문이다.
내 창조적 상상력은 글 쓰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 계속 할 수밖에."
그의 힘의 원천은 창조력 상상력 만이 아닌 것 같았다. 역시 학생운동을 하다 학교에서 쫓겨나 노동운동을 함께 했던 부인 전은주씨(全銀珠ㆍ43)도 그의 힘의 원천인 것 같았다.
"장관 임명 통보를 받은 날 집사람과 밤새 토론했다. 과연 내가 장관을 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 결론은 해볼만 하다는 것이었다.아내와 나는 일관되게 사회를 변혁시키려 노력해왔는데 사회변혁은 현재를 있는 그대로 파악한 후, 문제를 분석하고, 문제를 극복하는 힘의 근거를 찾아내서 시스템화해 본격적인 변화를 추진하면서 그 결과를 평가하고 관리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아내와 나는 정치나 행정도 결국 사회변혁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젊을 때부터 이런 일을 일관되게 해온 내가 못할 것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그날 밤 장관직이 과분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고민을 했다는 말로도 들린다.
"솔직히 말해 장관직이 맡겨질 줄은 생각 못했다.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나에게 까지 차례가 안 돌아 올 거라고 보았다.
차관은 할 수 있다는 생각은 했다. 정권 초기에는 우리처럼 젊은 사람들이 행정부에서 차관 경험을 쌓도록 해야 한다는 건의를 대통령에게 한 적도 있다."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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