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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강북 청소년 '문화 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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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강북 청소년 '문화 분단'

입력
2001.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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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과 강북의 지역간 격차가 강남ㆍ북 10대 청소년들 사이의 문화적 이질성을 급속히 심화시키고 있다.이 같은 문화적 차이는 단순한 생활수준의 차이를 넘어 강남과 강북 거주 청소년의 '문화적 분단'으로 고착하고 있어 인생관ㆍ가치관 등 의식구조까지 이질화시키는 심각한 사회갈등 요인으로 대두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국일보 기획취재팀이 15일 강남과 강북 고교생 591명(강남구 K고 308명, 동대문구 C고 28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K고는 10명중 6명(61.6%)이 해외여행을 다녀온 반면, C고의 경우 10명중 8명(82.2%)은 해외여행 경험이 아예 없었다.

또 5명이 갈 경우 10만원 이상 드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생일파티를 여는 학생은 강남(27.6%)이 강북(5.4%)의 5.1배였다.

패션의 이질화도 두드러진다. 패션업계에 따르면 강남 청소년들의 패션경향이 '브랜드 중시''헐렁한 힙합풍'이라면 강북은 '몸에 딱 붙는 복고풍'이다. 패션 전문가들은 "청소년들은 패션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상대를 평가한다"며 "패션이 다르면 집단 형성도 힘든 게 이들의 정서"라고 말했다.

인터넷 사이트에는 '강남에 거주하는 1979~81년생 킹카''강남 깔끔이들'등과 같이 가입자격을 제한하는 모임방이 급속히 늘고 있고, 이 같은 정서는 대학사회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교육의 이질화는 격차(隔差)의 문제로까지 확대된다. 설문조사 결과 과외를 받는다는 학생비율은 K고(28.5%)가 C고(14.3%)의 두배에 달했고, 학교 교육에 대한 불만족도는 K고(68.9%)가 C고(54.2%)보다 높았다.

최근 교육부 조사에서도 강남ㆍ서초ㆍ송파 지역의 지난해 총 과외비(286만6,000원)는 서울 다른 지역(139만1,000원)의 2배에 달했다. 강남의 한 고교 교사는 "교육이 투자 개념으로 바뀌면서 계층이동의 벽은 더욱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문화적 이질성과 교육 격차는 의식구조의 차이로 이어지고 있다. 설문조사 결과 K고 학생들의 장래희망은 사업가(13.6%), 방송ㆍ언론인(11.4%), 의사(8.4%), 컴퓨터 프로그래머(8.6%) 순이었으나 C고는 교직(14.9%) 사업가(14.2%) 의사(10.4%) 공무원(10.2%) 순으로 상대적으로 안정적 직업을 선호했다.

문화평론가 이정우(李晶宇ㆍ계원예술조형대) 교수는 "강북 청소년들이 진로ㆍ취업 등을 고민하는 현실 추구형이라면 강남 청소년들은 미래 추구형"이라며 "강남 청소년들이 강북에 비해 부모에 대한 의존도가 심하고 경제적 부담이 적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고려대 윤인진(尹麟鎭ㆍ사회학) 교수는 "기성세대들에게는 외환위기의 고통, 군부독재에 대한 항거, 타향살이와 보릿고개의 설움, 전쟁의 아픔이라는 정서적 유대감이라도 있지만 청소년들에게는 이 같은 공통분모마저 없다"며 "강남ㆍ북 청소년들간 문화적 이질성은 10년, 20년후 정치ㆍ사회적 논리로 해결할 수 없는 사회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경철기자

kckim@hk.co.kr

유병률기자

bryu@hk.co.kr

■강남 '힙합' 강북'복고'..교류도 단절

강남과 강북의 차별성은 청소년들의 패션 생활방식 가치관 등 곳곳에서 드러난다. 이러한 차별성은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긍정적 측면과 함께 타 지역에 대한 경원과 배타성이라는 어두운 측면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강남은 힙합, 강북은 복고

청소년들의 가장 중요한 자기표현 방식인 패션은 강남이 '브랜드주의'와 '헐렁한 힙합풍'이라면 강북은 '몸에 꽉 끼는 복고풍'이다. 헤어스타일의 핵심인 '컬러링(염색)'도 강남이 다양한 빛깔을 발산하는 '복합형'이라면 강북은 '단색 계열'이다.

문화평론가 이정우씨는 "양복의 변형인 복고풍은 가정 형편이 상대적으로 낮은 강북 청소년들이 빨리 부모로부터 독립해 성인이 되고자 하는 심리를 반영한 것이며, 강남의 힙합은 유학생들과 연예인들이 전파한 미국 문화의 상징"이라고 분석했다.

라이프 스타일(생활방식)에서의 차이도 뚜렷했는데 한국일보 기획취재팀이 강남ㆍ북 고교생 59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방학 때 주로 여행하는 곳이 어디냐'는 질문에 '가족과 함께 해외여행을 한다'는 응답은 강남(12.4%)이 강북(1.6%)의 7.6배에 달했고, '국내 콘도와 호텔'이라는 대답은 강남(28.2%)이 강북(11.8%)의 2.4배였다.

생일파티 장소에 대해서는 베니건스 등 고급 패밀리 레스토랑이라고 응답한 학생은 강남(27.6%)이 강북(5.4%)의 5.1배였고 분식점은 강북(18.0%)이 강남(3.3%)의 5.5배였다.

▦끼리끼리 어울린다

같은 대학을 다닌다는 사실, 그리고 사회변혁에 대한 공통된 열망을 매개로 개인적 배경에 상관없이 함께 어울렸던 기성세대와는 달리 최근 대학사회에서는 강남 출신과 강북 출신 학생들의 단절 현상이 두드러진다.

S대에서 현재 과 학생회장을 맡고 있는 김모(21)씨는 "강남출신이 학생회 간부를 맡는다든가 학회활동에 참여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며 "강남 아이들은 그들만의 세계와 공간을 고집하는 '아웃사이더'들"이라고 평했다.

반면 압구정동에 사는 대학생 윤모(22ㆍ여) 씨는 "강남 아이들은 근사한 데만 찾아갈 것 같다는 선입견이나 피해의식을 강북아이들은 갖고 있다"며 "강북 친구들을 대할 때는 조심스럽고, 특히 돈 얘기나 집안 얘기를 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고려대 대학원생 박병욱(28)씨는 "강남과 강북이라는 지역적 구분을 따라 대학사회가 양분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인터넷상의 '강남-강북 편가르기'는 이미 일반화한 현상이다. 동창모임을 소개하는 인터넷 사이트 '아이러브스쿨'(www.iloveschool.co.kr)의 경우 '강남지역 깔끔이들 모임' '강남에 거주하는 1979~81년생 킹카ㆍ퀸카 모임' 등 강남지역 거주자로 가입자격을 제한하는 동호회가 100여개 이상 개설돼 있다.

'프리챌'(www.freechal.com)에 개설된 한 강남지역 소모임의 소개 문구는 '강남 젊은이들만의 소수정예 멤버로 구성된 알짜배기 클럽'이다. 기본적으로 강남지역만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표현들이다.

이들 모임 중 상당수는 가입신청을 한 후 동호회 시솝(운영자)이 기본 인적사항을 심사해 '준회원' 자격을 부여하고 이후 동호회 전체모임에서 멤버들의 동의를 얻어야만 정회원 자격을 주는 등 '순수성' 유지에 신경을 쏟고 있다. 최근 인터넷 사이트 '다음' (www.daum.net)에는 강남ㆍ북의 화해를 목적으로 하는 소모임인 '한강을 가로질러'가 개설될 정도로 편가르기 현상은 심각하다.

▦가치관, 인생관도 차이

설문조사 결과 강남 지역 고교생은 대학학과 선택 시 최우선 고려사항으로 '적성ㆍ취미'(48.3%)를 제1 순위로 꼽은 반면, 강북은 '취업가능성 및 장래성'(52.0%)을 꼽았다. 장래희망 직업에 있어서도 강북에서는 교직, 공무원 등 전통적인 선호 직업이 각각 1위와 4위를 차지한 반면 강남에서는 각각 5위와 9위에 그쳤다.

강남 소재 B고 출신으로 현재 K대 법학과에 다니고 있는 신모(25)씨는 "강남 아이들의 가장 큰 특징의 하나는 고시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라며 "고시 외에도 편하게 살 수 있는 길이 많은데 구태여 악착같이 매달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시=가난한 학생들이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퍼져있다는 설명이다.

반면 유학이나 이민에 대한 관심은 아주 높다. 현재 여자친구와 함께 미국유학을 준비중인 Y대 4학년 정모(25ㆍ잠원동)씨는 "강남 친구들끼리 만나면 어느 분야는 어느 대학이 강하다. 어느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토플 점수가 얼마되어야 한다는 등 유학이 주된 화제"라고 소개했다.

▦교육의 격차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 조사에서 강남학군의 서울대 진학률이 강북의 한 구에 비해 최대 10배나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조사에서 대학 진학률은 과외비 지출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강남ㆍ북의 교육격차는 그러나 비단 입시교육에 한정되지 않는다.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양재동의 한 조기영어교육학원에는 현재 약 500명의 원생이 있다. 월 강습료가 70만~80만원에 이르지만 등록희망자가 줄을 서 기존 학생의 학부모 추천을 받은 학생들로 등록 자격을 제한하고 있다.

강남역에 있는 H유학원에는 방학 무렵이 되면 초등학생 어학연수 프로그램에 관한 문의가 폭주한다. 최근 강남지역 초등학생의 경우 영어, 글짓기, 피아노, 미술, 수영은 물론, 축구 개인지도 프로그램까지 나올 정도로 과외교육이 다양화하는 추세다.

압구정동 K고의 한 교사는 "어릴 때부터 학력수준이 높은 학부모들의 집중적인 관심과 투자 속에 성장한 강남 아이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며 "교육의 차별은 강남ㆍ북의 격차를 보다 심화시키고 세대를 넘어 영속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김경철기자

kckim@hk.co.kr

유병률기자

bryu@hk.co.kr

■전문가 진단

강남ㆍ북 청소년들의 문화적 이질성 심화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부가 문화시설, 교육시설에 대한 투자를 시장 메커니즘에 맡겼기 때문이라며 상대적으로 저소득층 가정의 자녀들도 다양한 문화와 고급 교육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려대 윤인진(尹麟鎭ㆍ사회학) 교수는 "청소년들 사이의 문화적 이질성은 결국 부의 격차가 공간적으로 반영된 결과"라며 "정부는 최소한 교육시설이나 문화시설이라도 상대적으로 소외된 지역에 균등하게 배분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교수는 강북지역에 미국식 '마그네틱 스쿨'(특수 목적고처럼 정부 투자를 확대,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학교)을 집중 육성하는 것을 한가지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또 "지방자치제 실시로 서울시내 지자체간 재정 격차가 심화, 지역간 불평등을 조정할 수 있는 수단이 더욱 줄었다"며 "지난해 서울시가 추진하려다 무산된 종합토지세와 담배소비세 세목교환을 재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목교환이란 구청간 격차가 심한 종합토지세(현재 구청이 징수)를 시가 거둬들이고 격차가 덜한 담배소비세(현재 시가 징수)를 구청이 거둬들이는 것이다.

한국교육개발원 이종태(李鍾泰) 박사는 "강남ㆍ북간 교육격차와 문화적 이질성은 결국 지역불균형발전 때문"이라며 "교육적으로 취약한 지역에 공교육비를 우선적으로 배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화평론가 이정우(李晶宇ㆍ계원예술조형대) 교수는 "강남지역 초등학생들은 친구 아버지가 타고 다니는 승용차 브랜드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을 정도로 '끼리끼리 문화' 현상이 심각하다"며 "소외된 지역의 청소년들도 자신이 원한다면 질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도현(韓道鉉) 교수는 "문화적 이질성이 민주화 시대에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라며 "다양한 문화적 패러다임의 존재를 인위적으로 조정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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