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 "수모 만회"미국이 정찰기 승무원들이 무사 귀환하자 마자 다시 중국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나섰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12일 기자회견에서 승무원들의 귀환을 11일간이나 막은 중국 당국의 결정을 비난한 뒤 "국제 영해에서 합법적으로 활동하는 미군기들에 대한 중국의 도전을 강력히 추궁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협상 과정에서 유화책을 구사했던 미국이 다시 강경자세로 돌아선 데 대해 전문가들은 미 행정부가 정찰기 반환 등 추가협상에 앞서 일단 기선을 제압하기위한 전술의 일환이라고 보고 있다.
양국은 오는 18일 후속협상을 앞두고 있으나 사고경위에 대한 이견 때문에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때문에 미측은 귀환한 승무원들로부터 사고경위를 파악한 결과 중국전투기에 더 큰 책임이 있다는 잠정 결론을 내리고 이를 기정 사실화하는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 같은 분위기를 토대로 향후 협상에서 사고에 대한 중국책임론을 강력히 추구할 것으로 보이며 나아가 중국 연안에 대한 안전 정찰활동을 중국이 보장할 것을 요구할 전망이다.
또한 이미 첨단 정찰시스템을 비롯 상당 부분 파손된 기체에 대한 반환 희망을 포기한 상태에서 중국에 대해 저자세협상을 벌였다는 국내의 비난여론을 무마하기위한 술책이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미국은 1968년 발생한 푸에블로호 사건 때도 '북한 영공을 침범한 점을 엄숙히 사과한다'는 치욕적인 사죄문을 건넸으나 승무원들이 귀환하자마자 북한에 대한 비난을 재개하고 선체 반환을 포기한 전력이 있다.
당장 헨리 하이드 하원 외교관계 위원장은 이날 "이번 사건으로 중국 정부의 본성이 여지없이 드러났다"며 부시 행정부에 강력한 대처를 요구하는 등 의회의 압박이 시작됐다.
워싱턴 포스트는 12일자 사설에서 "부시 행정부는 중국이 이번 사건에 대한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론향배를 중시할 수 밖에 없는 부시행정부로서는 이 같은 강경 드라이브 요구를 무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윤승용특파원
syyoon@hk.co.kr
■ 中 "배은망덕"
중국은 미국이 승무원들을 돌려 받자마자 '사과한 적이 없다'고 발뺌하자 상당히 분개한 눈치이다. 주룽지(朱鎔基) 총리가 12일 오후 "미국에 모든 책임이 있다. 승무원 귀환으로 사건이 끝난 게 아니다"고 경고한 것도 미국측의 '배은망덕'한 행위에 대한 불만의 토로로 볼 수 있다.
관영 언론은 서둘러 여론 무마에 나섰다. 신화통신은 13일 미국이 전달한 '대단히 미안하다(very sorry)'는 표현을 '사과하다'는 뜻인 '즈첸'(致(兼+欠))이라는 국내용 표현으로 바꾸어 사용, 미국이 '사과'했음을 강조했다. 또 실종된 전투기 조종사 왕웨이(王偉)에 대한 수색 작업을 상세히 보도, 국민들의 애국심을 자극했다.
중국은 승무원 카드를 '인도적 차원'에서 포기한 이상 EP-3 정찰기를 협상 무기로 최대한 활용할 태세이다. 장치웨(章啓月) 외교부 대변인은 12일 "우리는 조사 결과에 따라 정찰기를 처리할 것"이라고 밝혀 반환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강력히 시사했다.
따라서 중국은 18일 미국과의 협상 전에 정찰기의 가치를 파악하는데 진력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미국이 정찰기의 내부 탑재장비 및 정보들에 미련이 많을 경우 종래의 완강한 태도를 누그러뜨리고 배상 문제, 중국 연안 정찰 금지 등 다룬 현안에서도 양보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국은 그러나 이번 사태가 지나치게 국가간 자존심 대결로 치닫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미국내 반중(反中) 분위기가 확산될 경우 4월 미국의 대 대만 무기판매 결정, 인권상황과 연계한 미 하원의 베이징(北京) 올림픽 유치 방해 움직임, 6월 만료되는 정상교역관계(NTR) 지위부여 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측이 중국의 입장에 대해 진지한 태도를 취하기 바란다"는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의 표현에서도 읽을 수 있듯이 중국은 향후 실리를 챙기며 협상을 주도하되 미국을 지나치게 자극하지 않으려 애쓸 것으로 보인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