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하는 현대사 속에서 하나의 정신적 지주가 돼온 김수환 추기경이 팔순(6월 28일)과 사제 서품 50주년(9월 15일)을 맞는다. 이에 즈음하여 그의 삶과 정신적 궤적을 정리한 전집(전 18권)이 6월과 9월로 나뉘어 출간된다.김 추기경의 행적과 방대한 글에 비춰볼 때, 체계적으로 정리되는 김 추기경의 글은 종교계 뿐 아니라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마산교구장이었던 그는 1968년 46세에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됐고, 이듬해 우리나라 최초의 추기경이 되었다. 김 추기경은 유신, 5.18 등을 겪으며 한국 민주화 역사와 한 몸이 됐고, 명동성당은 민주주의의 성지로 여겨졌다.
가톨릭신앙생활연구소(회장 신치구)가 정리한 이번 전집에는 김 추기경이 주간 가톨릭 시보 사장이던 64년부터 98년 서울대교구장 은퇴 이후까지 각종 성사 강론, 대중 강연, 인터뷰, 기고문, 성명서 등 기록으로 남아있는 모든 자료가 망라돼 있다. 전집은 '목자의 소리' '하느님의 존재' '구원계획' 등 주제별로 나눠 묶었다.
특히 제13권 '국가권력과 교회'에 담긴 글은 그가 민주화의 길에서 남긴 크고 굵은 자취를 느낄 수 있다.
이미 68년 서울대교구장 취임사에서 '교회의 높은 담을 헐고 사회 속에 교회를 심어야 한다'며 역사에 동참하는 교회상을 제시했던 그는 정부의 인권탄압이 고조되던 71년 '이 절망적 상황의 돌파를 찾아서'라는 성탄 미사 강론을 했다. 이는 박정희 정부에 대한 비판의 신호탄이었다.
가톨릭 수장의 이 발언은 이후 가톨릭이 민주화의 구심점으로 자리잡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74년 지학순 주교가 민청학련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것을 계기로 정의구현사제단이 조직됐고, 이들이 개최한 시국기도회에서 김 추기경은 강론을 통해 이들의 발길에 힘을 실었다. 80년대에도 명동성당은 민주화의 성지로 위상을 지켰다.
일부에서는 교회가 정치에 너무 관여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하지만 '인간성 회복'이란 교회의 가르침을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했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전집을 준비 중인 신치호 회장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김 추기경의 정신은 변함이 없다.
인간 존엄성의 회복과 사랑의 실천이었다. 추기경은 소신을 변함없이 지켰고, 지금도 지키고 있으며 달라졌다면 그 주변의 사회였다"고 말했다.
79년 한달간 피정했을 당시 남긴 일기 중 "이번 피정이 나에겐 생사가 걸린 느낌"이라는 대목에서는 그의 시대적 고충을 엿볼 수 있다.
그 동안 김 추기경의 글을 모은 책이 몇 권 출간되기는 했지만, 주변에서 그의 강론이나 강연 내용 등을 단편적으로 모은 수준이었다. 이는 김 추기경의 뜻이기도 했다. 전집 발간도 김 추기경이 극구 사양해 보류되다가, 주변의 간곡한 부탁과 98년 서울대교구장 은퇴를 계기로 비로소 이뤄졌다
신치호 회장은 "김 추기경의 위상을 막연하게 알고 있던 연구위원 8명이 편집 작업에 참여하면서 모두 감탄했다. 그 숱한 강론과 강연내용을 직접 육필로 썼고, 내용 하나하나가 주옥 같은 글이었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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